溯源齋

충신염해(忠信廉解)는 왜 직접 묘사되지 않았는가 — 局(국)의 유체성과 格致藁의 서술 논리

· 최장혁

시리즈 안내

이 글은 격치고 연구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1편 — 格致藁는 이제마의 관계 의학이다 2편 — 장(場)이 역할을 배정한다 — 格致藁 팔괘잠의 관계역동론

1편은 비박탐나(鄙薄貪懦)의 원전 구조를 정리했고, 2편은 팔괘잠이 欺詐의 방향을 8가지로 분절하는 관계역동론임을 밝혔다. 3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 格致藁 전체에서 충신염해(忠信廉解)가 왜 직접 묘사되지 않았는가.


1. 질문의 맥락 (Introduction)

格致藁 卷3 獨行篇은 비박탐나의 행동양식을 극도로 상세하게 묘사한다. 심성의 구조(慾心無厭·私心無窮·放心無極·佚心無歇), 불초(不肖)의 근본, 횡포와 굴종의 역설적 패턴, 眼孔이 길들여진 방향, 결집 방식과 술책, 陰賊과 愚弄의 대상 — 현대 성격심리학 교과서에 비견할 만큼 정밀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충신염해(忠信廉解)의 긍정적 행동양식을 직접 묘사한 독립 원문이 없다.

충신염해가 格致藁에 등장하는 방식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 비박탐나의 분노 반응을 통한 간접 묘사:

원문: 忠者之行 鄙者必怒之 — 以其直尺之小誼而自多而簡他也 직역: 충자의 행실에 비자가 반드시 분노한다 — 직척(直尺)의 소의(小誼)로 스스로 많다 하고 남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주해: 忠이 무엇인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鄙者가 忠者에게 분노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忠의 윤곽이 비로소 드러난다. 忠者의 강직함이 鄙者의 눈에는 독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현대적 이해: 덕을 갖춘 사람이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 덕은 탁한 자의 분노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현현한다.

둘째, 대응원칙의 부산물로서의 묘사:

원문: 鄙者之力粗有一長於忠者則 凌心必生也 / 故以忠而制鄙者 不可不益修力也 직역: 비자의 힘이 거칠게나마 충자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으면 능멸하는 마음이 반드시 생긴다 / 그러므로 충으로 비자를 제어하려면 힘(力)을 더욱 닦지 않을 수 없다. 주해: 忠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忠이 鄙를 제어하려면 무엇을 더 닦아야 하는가를 말한다. 충신염해는 대응원칙의 주어로만 등장한다. 현대적 이해: 충신염해는 독립된 이상으로 정의되지 않고, 비박탐나와의 관계역동 속에서만 기능적으로 호출된다.

이것은 서술의 결함인가, 의도인가. 그 답은 格致藁 관계론의 기본 단위 — 局(국) — 로 들어가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2. 局(국) — 格致藁 관계론의 기본 단위

이 절에서 局(국)이라는 한자는 여러 층위로 등장한다. 미리 구분해 두면 독해가 쉽다.

첫째, 地局(지국) — 한 사람이 처한 구체적 사회 현장. “地局者 大家一身處地 …“에서 이제마가 직접 정의한 특정 局의 유형이다.

둘째, 資局·政所 등 복합어 — 원문에서 특정 영역의 局을 가리키는 합성어. 資局은 ‘재물과 이익이 오가는 局’, 즉 경제적 관계의 현장이다. 이 글에서는 원문 그대로 표기한다.

셋째, 局(국) — 格致藁 관계론의 기본 단위로서, 위의 地局과 資局 등을 포함한 추상적 개념. 인간이 서로 맞닿는 모든 접촉의 장(場)이다. 이 글에서 “局"이라고 쓸 때는 이 세 번째 층위를 가리킨다. 地局과 資局은 局(국)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局(국)이 추상적 원리라면, 地局과 資局은 그 원리가 특정 현장에서 구현된 이름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力·交·局·才의 局은 이 절에서 논하는 格致藁 관계론의 局(국)과 한자가 같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것은 동의수세보원 독행편 대응원칙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太陰人(태음인)이 廉의 편중을 막기 위해 닦아야 할 수양론적 덕목 — 국면을 경영하는 실천적 능력 — 을 가리킨다. 格致藁 관계론의 구조적 단위인 局(국)과는 출처도, 층위도, 기능도 다르다. 이 개념은 3절 대응원칙에서 다룬다.

2-1. 地局의 정의 — 局(국)은 어떻게 생겼는가

格致藁 卷3에서 局(국)은 地局의 정의를 통해 처음 등장한다:

원문: 地局者 大家一身處地 一方萬家恒産 萬務同出 / 廉者廣濟 貪者擅利 / 成就入民蕃殖財力之局也 직역: 지국(地局)이란 대가(大家) 한 몸이 처한 땅에서, 한 지방 만 가(萬家)의 항산(恒産)과 만 가지 일이 함께 나오는 것이다. 염자(廉者)는 널리 구제하고 탐자(貪者)는 이익을 전횡한다. 백성을 번식시키고 재력을 이루는 국(局)이다. 주해: 地局은 추상이 아니다. 한 사람이 처한 자리(處地)에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일이 동시에 얽혀 돌아가는 구체적 현장이다. 원문 마지막의 “局也"는 地局이 局(국)의 한 사례임을 확인해준다 — 지방 재력을 이루는 현장이 곧 局(국)이라고 마무리한다. 같은 地局 안에서 廉과 貪이 공존하며 길항한다. 局 밖에 廉이 있고 안에 貪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局(국)의 두 방향이다. 현대적 이해: 局(국)은 면(面)과 면이 유동적으로 맞닿는 접촉의 장(場)이다. 홉스의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이 부딪히는 “충돌면"과 달리, 이제마의 局(국)은 살아 있는 유기적 접촉면이다. 만 가지 일이 동시에 흘러나오고, 그 흐름 안에서 사람들의 역할이 유동적으로 배정된다.

2-2. 네 가지 局(국)의 구조와 互爲

局(국)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독행편은 인간이 맞닿는 局(국)의 네 유형을 정의한다:

원문: 政所有主客 世間有親疎 地方有統屬 居處有首從 직역: 정소(政所)에는 주객이 있고, 세간(世間)에는 친소가 있고, 지방(地方)에는 통속이 있고, 거처(居處)에는 수종이 있다. 주해: 같은 사람이 이 네 겹의 局(국)에 동시에 놓인다. 직장에서는 주객, 가족 안에서는 친소, 사회에서는 통속, 집에서는 수종의 局(국)을 동시에 살아간다. 역할이 유동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적 이해: 인간은 하나의 역할로 살지 않는다. 네 겹의 局(국)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의 기세를 만들어낸다.

그 각각의 局(국)에서 청(淸)과 탁(濁)이 고정되지 않고 서로 됨(互爲)한다:

원문: 主客有揖讓之道而忠奸有進退之機 / 統屬有公治之道而廉貪有內外之區 직역: 주객에는 읍양(揖讓)의 도가 있되 충간(忠奸)에는 진퇴의 기틀이 있다. 통속에는 공치(公治)의 도가 있되 염탐(廉貪)에는 내외의 구분이 있다. 주해: “忠奸有進退之機” — 충과 간이 서로 진퇴하는 기틀이 있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충과 간이 분리된 두 실체가 아니라, 같은 局(국) 안에서 互爲하는 양극이다. 현대적 이해: 주객의 局(국)에서 읍양(예를 갖춰 양보하는 것)이 마땅한 도이지만, 그 안에서 충과 간이 서로 진퇴한다. 규범이 있어도 그 규범 안에서 청탁이 유동한다.

이 구조는 한 번 더 명시된다:

원문: 富貴爲公之所出而忠奸互爲進退 / 資局營私之所立而廉貪互爲內外 직역: 부귀가 공(公)에서 나오되 충과 간은 서로 진퇴한다. 자국(資局)이 세워지되 염과 탐은 서로 내외가 된다. 주해: 資局은 재물과 이익이 오가는 局(국) — 경제적 관계의 현장이다. “互爲"가 두 번 반복된다. 정치적 局(국)에서도(忠奸互爲進退), 경제적 局(국)에서도(廉貪互爲內外) 청탁이 고정되지 않고 서로 된다(互爲). 地局에서 보여준 廉과 貪의 길항 구조가 資局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局(국)의 종류가 달라도 互爲의 원리는 동일하다. 현대적 이해: 충신염해가 독립된 이상(理想)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는 같은 局(국)의 두 방향이다. 局(국) 밖에 충신염해가 있고 局(국) 안에 비박탐나가 있는 것이 아니다.

2-3. 局(국) 안에서 비박탐나가 작동하는 방식

비박탐나가 局(국)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

원문: 作爲有苦暇而鄙者之作爲自暇而苦人 / 約束有誠僞而薄者之約束自僞而誠人 / 裁制有多寡而貪者之裁制自多而寡人 / 謀猷有利害而懦者之謀猷自利而害人 직역: 작위(作爲)에는 고(苦)와 가(暇)가 있되 비자의 작위는 자기가 한가하고 남을 고생시킨다. 약속에는 성(誠)과 위(僞)가 있되 박자의 약속은 자기가 거짓이고 남에게 성실하게 한다. 재제(裁制)에는 다(多)와 과(寡)가 있되 탐자의 재제는 자기가 많이 갖고 남을 적게 갖게 한다. 모유(謀猷)에는 이(利)와 해(害)가 있되 나자의 모유는 자기에게 이롭고 남에게 해롭다. 주해: 모든 局(국)에는 양면(苦暇·誠僞·多寡·利害)이 있다. 비박탐나는 그 양면 중 좋은 쪽을 자기에게, 나쁜 쪽을 남에게 배정한다. 충신염해는 반대 방향이다 — 양면성을 균형 있게 배분한다. 같은 局(국), 같은 양면성, 다른 방향. 현대적 이해: 충신염해가 무엇인지 따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비박탐나가 양면을 어떻게 배정하는지를 알면, 그 반대 방향이 충신염해다. 局(국)의 구조가 양자를 동시에 드러낸다.

2-4. 面의 유동적 접촉 — 고체와 유체

局(국)의 핵심은 면(面)을 유체(流體)로 본다는 것이다. 서양 관계론의 거의 전부는 면을 고체로 보았다. 홉스의 자연상태(충돌면), 지라르의 모방적 경쟁(제로섬), 레비나스의 비대칭(채무자-채권자 고정) — 고체가 부딪히면 깨지고, 깨지면 누가 깼는지 따지고, 피해자-가해자가 발생한다. 그래서 해법이 외부 규칙(법·계약·제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局(국)은 다르다. 2-2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충과 간이 서로 진퇴하고(忠奸互爲進退), 염과 탐이 서로 내외가 된다(廉貪互爲內外). 유체는 부딪히지 않는다. 흐름이 있다. 흐름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가가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를 가른다.

서양이 면을 딱딱하게 본 순간 외부 규칙이 해법이 되었다. 이제마는 면 안으로 들어가 면의 역동 자체를 읽었다. 그 읽기의 단위가 局(국)이다. 그리고 그 역동의 언어로 충신염해와 비박탐나의 관계를 기술한 것이 格致藁다.


3. 문헌이 말하는 것 (Results)

3-1. 확충론 — 같은 뿌리의 두 방향

2절에서 局(국)이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를 같은 장(場)의 양극으로 본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의수세보원 卷1 확충론(擴充論)은 이것이 존재론적으로도 성립함을 보여준다:

원문: 太陽之人 雖好爲雄 亦或宜雌 / 若全好爲雄則 放縦之心必過也 직역: 태양인은 비록 웅(雄)이 되기를 좋아하나 또한 혹 자(雌)가 마땅할 때도 있다. 만일 전적으로 웅이 되기만을 좋아하면 방종의 마음이 반드시 지나치게 된다. 주해: “全"이 키워드다. 다른 방향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이 전락의 원인이다. 局(국)의 언어로 읽으면: 한 방향만의 면은 유동성을 잃고 고체가 된다. 현대적 이해: 비박탐나는 나쁜 마음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래 있는 정기(情氣)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반대 방향이 사라질 때 발생한다.

체질 원래 정기 충신염해 방향 극단화 조건 비박탐나 전락
太陽 好爲雄 忠의 방향 全好爲雄 放縦之心 → 鄙
少陰 好爲雌 解의 방향 全好爲雌 偸逸之心 → 懦
少陽 好外勝 信의 방향 全好外勝 偏私之心 → 薄
太陰 好內守 廉의 방향 全好內守 物欲之心 → 貪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는 같은 체질 정기(情氣)의 양극이다. 태양인의 好爲雄이 적절하면 忠이 되고, 전적으로 기울면 鄙가 된다. 이것은 선악의 이원론이 아니라 균형과 편중의 역동이다. 局(국)이 이 역동의 무대다.

3-2. 분노 반응을 통한 충신염해(忠信廉解)의 간접 현현

독행편에서 충신염해는 오직 비박탐나의 분노 반응을 통해 그 윤곽이 드러난다:

원문: 信者之行 薄者必怒之 — 以其彌縫之小諒而貴己而賤人也 직역: 신자(信者)의 행실에 박자가 반드시 분노한다 — 그 미봉(彌縫)의 소량(小諒)으로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남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주해: 薄者의 눈(眼孔)에 信者의 성실함이 “미봉의 소량"으로 보인다. 信이 무엇인지를 직접 정의하지 않지만, 薄者의 분노 반응을 통해 信의 윤곽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2-3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같은 約束의 局(국)에서, 박자는 자기가 거짓이고 남에게 성실을 강요한다. 신자는 반대 방향이다. 현대적 이해: 성실한 사람을 만나면 불성실한 사람이 분노한다. 그 분노의 이유가 역설적으로 성실함의 내용을 보여준다.

원문: 廉者之行 貪者必怒之 — 以其要名之小讓而必欲幷呑廣居也 직역: 염자(廉者)의 행실에 탐자가 반드시 분노한다 — 그 요명(要名)의 소양(小讓)으로 반드시 넓은 곳을 아울러 삼키려 하기 때문이다. 주해: 貪者의 眼孔에 廉者의 청렴은 “명성을 구하는 작은 양보"로 보인다. 地局의 구조(廉者廣濟 貪者擅利)로 읽으면: 탐자는 廣濟를 못하므로, 廉者가 廣濟하는 것을 “大局을 삼키려는 야심"으로 오독한다. 현대적 이해: 局(국) 안에서 탐자의 세계에는 순수한 양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廣濟는 은폐된 幷呑으로 보인다.

원문: 解者之行 懦者必怒之 — 以其誘人之小慧而必欲據取大位也 직역: 해자(解者)의 행실에 나자가 반드시 분노한다 — 그 유인(誘人)의 소혜(小慧)로 반드시 큰 자리를 점거하려 하기 때문이다. 주해: 懦者 자신이 “萬行全爲役人之計"이므로, 타인의 지혜도 같은 계략으로 읽는다. 居處의 局(국)(首從 — 앞장서는 자와 따르는 자)에서: 나자는 首의 자리를 원하면서 從의 역할에 있으므로, 해자가 首의 위치에 있는 것을 위협으로 본다. 현대적 이해: 자기가 남을 이용하는 사람은, 남의 지혜도 이용의 도구로밖에 볼 수 없다.

格致藁의 서술 전략이 여기서 명확해진다. 충신염해가 무엇인지를 직접 말하지 않고, 비박탐나의 왜곡된 시선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局(국)의 구조(2-3에서 확인한 작위·약속·재제·모유의 양면)를 알면, 비박탐나가 어떻게 배정하는지와 충신염해가 어떻게 배정하는지가 대비로서 자동으로 보인다.

3-3. 대응원칙 — 力·交·局·才가 말하는 것

대응원칙을 “충자가 비자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읽으면 논점이 엉망이 된다. 충신염해를 비박탐나와 마주 보는 별개의 주체로 세우는 순간 — 충신염해는 타자화되고, “왜 직접 묘사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원문의 주어는 나 자신이다. 같은 局(국) 안에서 비교우위상 충신염해 쪽에 있는 사람도 마음이 상하는 상황에 놓인다 — 비박탐나 쪽이 어느 한 가지에서라도 우위를 점하는 순간 凌心이 파고든다. 대응원칙은 그 자리에서 감정으로 대응하지 말고 力·交·局·才를 더 닦으라는 처방이다. 감정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凌心이 발동할 틈을 더 크게 만든다 — 이것이 3-4에서 확인할 내용이다.

원문: 鄙者之力粗有一長於忠者則 凌心必生也 / 故以忠而制鄙者 不可不益修力也 직역: 비자의 힘이 거칠게나마 충자보다 한 가지라도 나은 점이 있으면 능멸하는 마음(凌心)이 반드시 생긴다 / 그러므로 충으로 비자를 제어하려면 힘(力)을 더욱 닦지 않을 수 없다. 주해: “凌心必生也” — 凌心은 반드시 생긴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그 상한 마음에 머물러 감정으로 맞서면, 局(국)은 고체화되고 凌心이 발동할 틈이 더 커진다. 力을 닦는 것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파고들 자리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다. 현대적 이해: 마음이 상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막아야 할 것은 그 상한 마음이 감정적 대응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凌心을 불러들인다.

여기서 등장하는 力·交·局·才는 각 체질이 자신의 덕목이 편중으로 흐르지 않도록 닦아야 할 수양론적 균형축이다. 2절에서 논한 格致藁 관계론의 局(국) — 인간이 맞닿는 접촉의 장(場) — 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내 정기의 방향 닦을 것 닦지 않으면 감정 대응 시 발동하는 기세
忠의 방향 力 (실력) 말뿐인 강직 → 放縦 → 鄙 凌心(능멸)
信의 방향 交 (관계 다루기) 혼자만의 성실 → 偸逸 → 懦 傾心(기울임)
廉의 방향 局 (국면 경영) 빈 청렴 → 物欲 → 貪 賊心(해침)
解의 방향 才 (재능 실현) 공허한 지혜 → 偏私 → 薄 嫉心(질투)

3-4. 凌心·傾心·賊心·嫉心 — 감정으로 대응했을 때 발동하는 기세

3-3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力·交·局·才를 닦지 않고 감정으로 대응하면 局(국)이 고체화되는 순간이 생긴다. 凌心·傾心·賊心·嫉心은 바로 그 순간에 발동하는 기세(機勢)다.

원문: 鄙者之力粗有一長於忠者則 凌心必生也 직역: 비자의 힘이 거칠게나마 충자보다 한 가지라도 나은 점이 있으면 능멸하는 마음(凌心)이 반드시 생긴다. 주해: 凌心은 비박탐나만의 나쁜 마음이 아니다. 내가 力을 갖추고 있으면 상대의 우위가 발동시킬 자리가 없다. 반대로 내가 상한 마음을 감정으로 표출하는 순간 — 局(국)이 고체화되고 凌心이 그 틈으로 파고든다. 이것이 팔괘잠(2편)의 “장이 역할을 배정한다"가 독행편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현대적 이해: 凌心·傾心·賊心·嫉心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力·交·局·才를 닦지 않아 균형이 무너진 자리에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3-3의 표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忠의 방향에서 감정으로 대응하면 凌心이, 信의 방향에서 감정으로 대응하면 傾心이, 廉의 방향에서 감정으로 대응하면 賊心이, 解의 방향에서 감정으로 대응하면 嫉心이 발동한다. 충신염해와 비박탐나가 두 진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局(국) 안에서 내가 감정에 머무르는 순간 기세가 전환된다.


4. 세 겹의 답 (Discussion)

4-1. 제1층 — 홍운탁월(鴻雲卓越)식 서술 전략

2절에서 확인한 局(국)의 구조 — 같은 장(場)의 양극으로서의 충신염해와 비박탐나, 互爲하는 양면 — 를 전제로 하면, 格致藁의 서술 전략이 이해된다.

먹구름(鴻雲)을 그리면 그 사이로 빈 하늘이 도드라진다. 格致藁는 비박탐나(먹구름)를 극도로 상세하게 그림으로써 충신염해(빈 하늘)를 드러낸다.

兌箴에서 이것은 명시적으로 선언된다:

원문: 是故格物致知 都在於察乎詭詐 / 誠意正心 都在於察乎詭詐 / 修身齊家 都在於察乎詭詐 / 治國平天下 都在於察乎詭詐 직역: 그러므로 격물치지도 모두 사기(詭詐)를 살피는 데 달려 있고, 성의정심도 모두 사기를 살피는 데 달려 있고, 수신제가도 모두 사기를 살피는 데 달려 있고, 치국평천하도 모두 사기를 살피는 데 달려 있다. 주해: 대학(大學)의 8조목 전체를 “察乎詭詐” 하나로 환원했다. 주자의 格物窮理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사기(詭詐)를 살피는 것이 격물이다. 비박탐나의 詭詐를 살피면 나머지(충신염해)는 자동으로 드러난다. 현대적 이해: 충신염해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비박탐나의 사기를 살피는 눈(眼孔)이 밝아지면 사기 아닌 것은 저절로 보인다.

兌箴의 같은 대목에서 이제마는 그 논리의 근거를 밝힌다:

원문: 性純善也 聖人與君子小人一同也 / 心可以善惡也 聖人與君子小人萬殊也 / 一同者善也 一同故易知也 / 萬殊者惡也 萬殊故難知也 직역: 성(性)은 순선하다. 성인과 군자·소인이 하나같이 같다. 마음(心)은 선악이 가능하다. 성인과 군자·소인이 만 가지로 다르다. 같은 것(一同)은 선이다. 같으므로 쉽게 안다. 만 가지로 다른 것(萬殊)은 악이다. 만 가지로 다르므로 어렵게 안다. 주해: 성(性)의 층위 — 존재론 — 에서 인간은 모두 같다. 마음(心)의 층위 — 局(국) 안의 관계론 — 에서 인간은 만 가지로 다르다. 局(국)이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를 같은 장(場)의 양극으로 만드는 것은 이 심(心)의 층위에서 일어난다. 현대적 이해: 충신염해(善=一同)는 쉬우므로 이미 안다. 비박탐나(惡=萬殊)는 어려우므로 다뤄야 한다. 어려운 것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쉬운 것은 그 부정(否定)으로서 자동으로 드러난다.

格致藁가 비박탐나만 상세하게 쓴 것은 서술의 결함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정당한 전략이다. 局(국)의 구조가 그것을 필연적으로 만든다 — 같은 장(場)의 두 방향을 묘사할 때, 어려운 방향(비박탐나=萬殊)을 기술하면 쉬운 방향(충신염해=一同)은 자동으로 드러난다.

4-2. 제2층 —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의 원천적 회피

충신염해의 구체적 이야기를 쓰면 자동으로 “충신인 내가 비박탐나인 저놈에게 당했다"가 된다. 이제마도 사람이고 억울했을 것이다. 57세까지 “屢復屢失"하며 낭패를 당한 사람이다. 그 억울함 속에서 충신 이야기를 쓰면 무의식적으로 피해자 프레임에 빠진다.

反誠箴에서 이제마는 이렇게 말한다:

원문: 東武自幼至老 千思萬思 詐心無窮 / 行詐則箇箇狼狽 愈困愈屈 / 不得己 反於誠而自警也 직역: 동무는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천 번 만 번 생각해도 속이려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 속임수를 행하면 번번이 낭패를 당하고 더욱 곤란해지고 더욱 굴복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誠)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경계하게 되었다. 주해: “不得己” — 어쩔 수 없이. 反誠은 깨달음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어서 도달한 것이다. 속임수를 행하면 번번이 낭패를 당했으므로, 속이지 않는 쪽이 차라리 낫다는 실전적 판단이다. 현대적 이해: 이제마 본인이 비박탐나다. “나도 속이는 놈이다"를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이 자리에서 충신염해의 이야기를 쓰면 자기 모순이 된다.

그리고 이 회피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坤箴이 밝힌 바와 같이:

원문: 我有强力 人必趁我 / 人旣趁我 我必行奪 직역: 내가 강력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나에게 몰려온다. 사람들이 이미 나에게 몰려왔으므로 내가 반드시 빼앗음을 행한다. 주해: “我必行奪” — 내가 “반드시” 빼앗는다. 의지가 아니라 必然이다. 2절에서 확인한 局(국)의 역동이다 — 장(場)의 구조가 역할을 만들어낸다. 局(국)이 유동적이므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고정되지 않는다. 현대적 이해: 나쁜 마음이 있어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장(場)이 빼앗음의 역할을 자동으로 배정한다. 局(국)의 구조가 만들어낸 것이다.

같은 사람이 존심(存心)의 장에서는 기만의 주체가 되고, 수신(守身)의 장에서는 기만의 객체가 된다.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은 이 유동적 局(국)의 구조를 고정시키는 오류다.

독행편 말미의 처방:

원문: 正人深藏 不當其鋒可也 / 渠本無知 亦不可酷毒治之 / 無知之人 酷毒治之則虐無告也 직역: 정인(正人)은 깊이 숨어 그 봉(鋒)을 당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저들은 본래 무지하니 혹독하게 다스려서는 안 된다. 무지한 사람을 혹독하게 다스리면 고할 곳 없는 자를 학대하는 것이다. 주해: “渠本無知” — 저들은 본래 무지하다. 악의가 아니라 무지(無知)로 본다. 局(국)의 역동에서 비박탐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正人深藏” — 충신염해를 드러내지 말라는 처방이다. 드러내면 비박탐나의 봉(鋒)을 맞는다. 현대적 이해: 格致藁에는 승리의 서사가 없다. 비박탐나를 교정하거나 처벌하는 이야기도, 충신염해가 승리하는 이야기도 없다. 局(국)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흐름을 읽고 버티는가만 있다.

4-3. 제3층 — 이상을 상정하지 않겠다는 결기

이것이 가장 깊은 답이다. 그리고 局(국)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답이다.

2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局(국) 안에서 충신염해와 비박탐나는 互爲한다 — 서로 됨(互爲)하는 양극이다. 충신염해를 직접 묘사하여 이상으로 세우는 순간, 이 互爲의 구조가 무너진다. 고정된 이상이 되면 → 도달해야 할 곳이 된다 → “충신이 되세요” = “성인이 되세요” = “구원받으세요” = 종교가 된다.

格致藁 서문에서:

원문: 可以旁行於世而不可以正行於世者也 직역: 세상에서 곁길(旁行)로는 쓸 수 있으나 바른길(正行)로는 쓸 수 없는 것이다. 주해: 正行은 이상(理想)으로서의 수양서. 旁行은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참고서. 이제마 스스로 格致藁를 이상서가 아니라 실전서로 규정했다. 충신염해를 직접 묘사하면 그것은 正行이 된다 — 이제마가 스스로 거부한 바로 그 자리다. 현대적 이해: 正行이 아니라 旁行. 이상이 아니라 실전. 도달점이 아니라 매일의 버팀. 충신염해를 직접 묘사하면 그것은 正行이 된다.

反誠箴에서:

원문: 詐心便發 未及行詐而反誠則學問也 /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己矣 직역: 속이려는 마음이 문득 발동하되 아직 속임수를 행하지 않고 성(誠)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학문이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없다 —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구할 뿐이다. 주해: “便發” — 문득 발동한다. 속이려는 마음은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올라온다. “未及行詐” — 아직 행하지 않은 찰나. 이 찰나에 돌아오는 것이 학문이다. 속이려는 마음 자체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현대적 이해: 완성이 없다. 도달점이 없다. 매번 실패하고 매번 돌아오는 것 — 미분적 완성. 충신염해를 목표로 세우면 적분적 완성이 된다 — 도달점이 생기고 종교가 된다. 이제마는 이 함정을 피했다.

역상(易象)의 권위도 걷어냈다:

원문: 形理之取象 只是臆見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 직역: 형리(形理)의 취상(取象)은 다만 나의 억견(臆見)일 뿐이다. 진정 복희(伏羲)의 역상(易象)이 이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주해: 팔괘잠 전체의 구조 — 건곤이감진손간태의 8괘 배치 — 가 복희의 역(易)을 빌린 것이지 복희의 진의가 이러하다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한다. 초월적 권위를 스스로 걷어낸 것이다. 현대적 이해: 格致藁는 계시도 진리도 아니다. 한 인간의 억견이다. 종교가 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충신염해를 쓰면 → 이상이 된다 → 格致藁가 종교가 된다.

세 겹을 정리한다:

성격 局(국)과의 연결
1층 홍운탁월 — 탁함을 제거하면 청함이 드러난다 기법 같은 장(場)의 두 방향, 어려운 쪽을 기술하면 쉬운 쪽은 자동으로 드러남
2층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의 원천적 회피 인간적 동기 局(국)이 유동적이므로 가해자·피해자가 고정되지 않음
3층 이상을 상정하지 않겠다는 결기 사상적 결단 互爲의 구조를 고정된 이상으로 굳히는 것의 거부

5. 인류 관계론의 지형 (Comparative Analysis)

충신염해를 직접 묘사하지 않은 이 결단의 의미는, 인류 사상사의 관계론 전체를 조감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관계론이란, 인간이 만났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체계적으로 다룬 사상을 말한다.

5-1. 홉스 — 고체역학으로서의 관계론

서양 관계론의 원형은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자연상태론이다. 『리바이어던』(1651) 제13장:

원문: “Hereby it is manifest that during the time men live without a common Power to keep them all in awe, they are in that condition which is called War; and such a war as is of every man against every man.” 직역: 이로써 분명해지는 바, 사람들이 모두를 외경하게 하는 공통 권력 없이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전쟁이라 불리는 상태에 있으며, 그것은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다. 해석: 홉스에게 관계의 기본 상태는 전쟁이다. 공통 권력 없이 인간이 맞닿으면 충돌이 시작된다. 면(面)을 고체로 본 것이다.

원문: “No arts; no letters; no society; and which is worst of all, continual fear, and danger of violent death; and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직역: 기술도 없고, 문자도 없고, 사회도 없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끊임없는 공포와 폭력적 죽음의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짧다. 해석: 고체의 충돌면이 만들어내는 자연상태의 체감. “nasty, brutish, and short” — 고체역학적 관계론의 귀결을 세 단어로 압축했다. 부딪히면 깨지고, 깨지면 가해자가 생기고, 가해자가 있으면 전쟁이다.

홉스의 세 가지 다툼의 원인 — 경쟁(competition), 불신(diffidence), 명예(glory) — 은 格致藁의 비박탐나와 구조적으로 겹친다.

그러나 결정적 분기: 홉스의 해법은 외부 권력(리바이어던)이다. 면이 고체이므로 부딪히면 깨지고, 깨지지 않으려면 외부의 힘으로 고정해야 한다. 格致藁의 해법은 다르다. 2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局(국)은 유체다 — 忠奸互爲進退, 廉貪互爲內外. 외부 권력이 아니라 **내적 실천(反誠)**이 답이 된다.

5-2. 레비나스 — 비대칭의 윤리학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전체성과 무한』(Totalité et Infini, 1961). 타자의 얼굴(visage)은 나의 전체성(totality)을 깨뜨리는 무한(infinity)의 현현이다. 윤리적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 나는 타자의 “인질(otage)“이다.

이 비대칭성은 格致藁의 존심·수신 비대칭과 구조적으로 겹친다:

원문: 乾坤离坎箴之情僞 我必行欺詐於人之機勢也 存心之戒也 / 艮兌震巽箴之情僞 人必行欺詐於我之機勢也 守身之戒也 직역: 건곤이감잠의 정위(情僞)는 내가 반드시 남에게 기만을 행할 기세이니 존심(存心)의 경계이다. 간태진손잠의 정위는 남이 반드시 나에게 기만을 행할 기세이니 수신(守身)의 경계이다. 주해: “情僞” — 진심(情)과 거짓(僞)이 뒤섞인 상태. “機勢” —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힘의 방향. 局(국)의 역동이 팔괘잠에 8방향으로 펼쳐진 것이다. 존심과 수신의 비대칭은 局(국)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 어떤 局(국)에서는 내가 주체, 다른 局(국)에서는 내가 객체. 현대적 이해: 같은 사람이 어떤 局(국)에서는 기만의 주체가 되고 다른 局(국)에서는 기만의 객체가 된다. 방향이 고정되지 않으므로 채무자도 채권자도 없다.

두 체계 모두 관계가 비대칭적임을 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 레비나스의 비대칭은 고정된 방향이다 — 나는 항상 타자에게 빚지고 있다. 格致藁의 비대칭은 유동적이다 — 局(국)이 바뀌면 방향이 바뀐다. 互爲한다.

레비나스에게 이 제한은 윤리적 명령이다. 이제마에게 이 제한은 구조적 현실이다 — 局(국)이 그렇게 작동하므로 읽고 대응하라.

5-3. 지라르 — 모방과 제로섬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이론. 욕망이 삼각구조를 가지며, 모방이 경쟁이 되고 경쟁이 폭력으로 귀결된다. 핵심 통찰: 욕망 자체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다.

이것은 坤箴과 구조적으로 겹친다:

원문: 我有强力 人必趁我 / 人旣趁我 我必行奪 직역: 내가 강력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나에게 몰려온다. 사람들이 이미 나에게 몰려왔으므로 내가 반드시 빼앗음을 행한다. 주해: 지라르의 “모델이 있으므로 욕망이 생긴다"와 이제마의 “강력함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몰려오고, 몰려오므로 빼앗음이 생긴다"는 같은 구조다.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가 행위를 발생시킨다. 현대적 이해: 욕망과 기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局(국)이 만들어내는 구조의 문제다.

그러나 지라르의 관계는 제로섬이다. 폭력의 봉합은 희생양 메커니즘뿐이다.

格致藁에는 다른 경로가 있다. 离箴:

원문: 愛人也者 愛人而成立之也 / 勇如信布亦愛之 怯如丐乞亦愛之 직역: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여 성립시키는 것이다. 용감하기가 한신(韓信)·경포(黥布)와 같은 자도 사랑하고, 겁쟁이처럼 거지 같은 자도 사랑한다. 주해: “成立之” — 상대를 성립시킨다. 제로섬의 바깥이다. 局(국) 안에서 내가 수양함으로써 관계 전체가 성립한다. 용장과 겁쟁이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 局(국) 안에서 역할이 어떻게 배정되든 상대를 성립시키는 방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이해: 지라르에게 없는 것이 이제마에게 있다 — 각립(各立)과 대동(大同)의 가능성. 局(국)의 유체성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지라르는 구조를 폭로하고 멈추었다. 이제마는 局(국) 안에서의 매일의 실천까지 나아갔다.

5-4. 공자 — 정명(正名)의 위계 고정

논어 안연편(顏淵篇)의 정명론:

원문: 君君臣臣父父子子 직역: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주해: 역할이 먼저 정해져 있고, 그 역할에 맞게 사는 것이 관계의 도리다.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규범을 정한다. 역할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현대적 이해: 2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格致藁는 정반대다. 역할은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局(국)이 배정한다. 忠奸互爲進退 — 충과 간이 서로 진퇴한다.

格致藁는 성리학의 언어를 빌렸으나 그 형이상학은 버렸다. 格致藁에서 格物은 察乎詭詐다 — 局(국) 안에서 작동하는 사기(詭詐)를 살피는 것. 규범이 아니라 분석이다.

5-5. 한비자 — 가장 가까운 동아시아 사상, 그리고 결정적 분기

한비자의 세(勢) 개념은 格致藁의 “局(국)이 역할을 배정한다"와 구조적으로 거의 동일한 통찰이다.

그러나 처방에서 완전히 갈라진다:

한비자 格致藁
局(국)을 읽는다 맞음 맞음
목적 이기기 위해 망가지지 않기 위해
나의 위치 항상 주체 (군주) 유동적 (나도 배정당한다)
자기 인식 없음 있음 — “나도 비박탐나”
반성잠 없다 있다

반성잠의 유무가 전략서와 格致藁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다. 局(국) 안에 있는 자의 언어와 局(국) 위에서 보는 자의 언어의 차이다.

5-6. 양명학 — 같은 찰나를 겨냥하되,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다르다

왕양명의 知行合一. 반성잠의 핵심 구절과 나란히 놓으면:

원문(反誠箴): 詐心便發 未及行詐而反誠則學問也 직역: 속이려는 마음이 문득 발동하되 아직 속임수를 행하지 않고 성(誠)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학문이다. 주해: “便發” — 문득 발동. 속이려는 마음은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올라온다. 이 순간이 학문의 자리다. 현대적 이해: 마음이 움직이는 바로 그 찰나에 개입하라.

원문(陽明): 知善知惡是良知 爲善去惡是格物 직역: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이 양지(良知)이고,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이다. 주해: 앎과 행함이 별개가 아니다. 아는 순간이 행하는 순간이다. 양명학도 마음이 움직이는 바로 그 찰나를 겨냥한다. 현대적 이해: 反誠箴과 같은 찰나를 겨냥하지만 — 안을 파면 나오는 것이 다르다.

결정적 차이 — 안을 파면 나오는 것이 다르다.

양명학은 안을 파면 양지(良知)가 나온다. 格致藁는 안을 파면 비박탐나가 나온다. “千思萬思 詐心無窮” — 57세까지 파고들어도 양지가 나오지 않는다. 局(국)의 현실 안에서, 완성이 없다.

양명학 格致藁
안을 파면 양지(良知)가 나온다 비박탐나가 나온다
도달점 있음 (양지 회복) 없음 (미분적 완성)
자기 인식 자기 확신 (양지를 믿어라) 자기 의심 (나도 비박탐나)

양명학은 “내 마음 안에 답이 있다"는 전제 위에 있다. 이제마는 “내 마음 안에 답이 없다"는 전제 위에 있다. 있는 것은 反誠뿐이다 — 매 순간 局(국) 안에서 돌아오는 것.

5-7. 서양 심리학의 관계론 6개 학파

애착이론(Bowlby/Ainsworth): 양육자-아이 관계의 안정/불안정 패턴. 가해의 구조가 전제된다.

대상관계이론(Klein/Winnicott): 내면화된 피해자-가해자 구도.

자기심리학(Kohut): 자기대상(selfobject) 기능의 실패가 병리의 원인.

교류분석(Berne): 兌箴의 “察乎詭詐"와 게임 분석은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처방은 “게임을 그만두라” — 그만둘 수 있다는 전제다.

체계이론(Bateson/Minuchin/Bowen): “확인된 환자(identified patient)” 개념은 格致藁의 “局(국)이 역할을 배정한다"와 동일한 통찰이다. 가장 가까운 서양 이론. 그러나 처방은 “역기능을 고치자” — 해결 가능하다는 전제다.

관계정신분석(Mitchell): 관계적 매트릭스(relational matrix)가 치료의 도구다. 格致藁의 관계역동론과 가장 체감이 비슷하지만 치료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작동한다.

格致藁와의 결정적 차이: 이 모든 심리학적 관계론은 해결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있다. 이제마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2절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관계가 있으면 局(국)이 생기고, 局(국)이 생기면 역할이 배정되고, 역할이 배정되면 欺詐의 기세가 생긴다 — 互爲하는 구조는 고칠 수 없다. 그래서 反誠이 답이 된 것이다.

독행편 말미:

원문: 正人深藏 不當其鋒可也 / 渠本無知 亦不可酷毒治之 직역: 정인(正人)은 깊이 숨어 그 봉(鋒)을 당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저들은 본래 무지하니 혹독하게 다스려서는 안 된다. 주해: “고치자"가 아니다. “숨어라"다. 局(국) 안에서의 버팀이다. 현대적 이해: 서양 심리학이 역기능을 교정하려는 데 반해, 格致藁는 구조 안에서 어떻게 버티는가를 말한다.

5-8. 부버 — 만남의 이상론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너(Ich-Du) 만남은 관계의 이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만남이 왜 대부분 실패하는가에 대한 구조 분석이 없다.

格致藁는 정반대다. 만남이 실패하는 기제(비박탐나의 眼孔, 欺詐의 기세, 局(국)의 역동)를 극도로 상세하게 분석하되, 성공적인 만남의 이상을 세우지 않는다. 부버가 빛을 보여주었다면, 이제마는 어둠의 지형을 그렸다. 어둠을 제거하면 빛은 자동으로 드러난다.

5-9. 프레임 밖 — 格致藁가 유일한 이유

사상 전통 관계를 본다 핵심 프레임/한계
노장·불교·주자성리학 보지 않는다 존재론에 흡수
홉스 본다 고체역학 → 외부 권력으로 해결
기독교·지라르 본다 피해자-가해자 고정 / 제로섬
레비나스 본다 비대칭 고정 (채무자-채권자)
푸코 본다 억압자-피억압자 고정
공자/논어 본다 위계 고정 (正名)
부버 본다 이상론 (구조분석 없음)
한비자·손자·마키아벨리 본다 이기기 위해 읽음 (반성잠 없음)
양명학 본다 자기 확신 (도달점 있음)
보울비·클라인·코헛 본다 양육/발달 프레임
체계이론·교류분석 본다 해결 가능 전제 (가장 가까움)
이제마/格致藁 본다 局(국)의 유체성 + 해결 불가능 인정 + 매 순간 실천

格致藁만이 다음 네 가지를 동시에 충족한다:

  1. 관계의 역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팔괘잠의 8방향, 독행편의 4유형)
  2. 피해자-가해자를 고정하지 않는다 (局(국)이 역할을 배정한다, 互爲)
  3.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反誠 — 매 순간 돌아올 뿐)
  4. 충신염해라는 이상을 세우지 않는다 (종교화 거부)

6. 결론 (Conclusion)

6-1. 현대 사회와 格致藁

SNS의 싸움, 댓글 전쟁, 직장 내 갈등, 가족 관계의 소진 — 현대 관계론적 마찰의 대부분은 면(面)을 고체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경계를 지키세요”, “나르시시스트를 식별하세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습니다” — 가해자를 특정하는 순간 면이 굳고 관계가 죽는다.

格致藁의 처방은 다르다. 비박탐나를 “악인"으로 낙인찍지 않는다(渠本無知). 局(국)의 구조를 읽되 가해자를 고정하지 않는다(忠奸互爲進退).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되 포기하지 않는다(詐心便發 未及行詐而反誠則學問也). 매 순간 돌아온다(屢復屢失而至於自警也).

6-2. 반성잠에 원망이 없는 이유

홉스적 세계에서 57세까지 싸우면 전쟁 피로증이 온다. 분노, 원망, 소진. 이제마의 반성잠에는 원망이 없다. “詐亦難矣哉"는 탄식이지 원망이 아니다. 局(국)의 유체 안에 있는 사람의 체감이다. 부딪힌 것이 아니라 흘러간 것.

오복론(五福論)에서:

원문: 禍福無不自己求之者而壽夭無不自己求之 직역: 화복은 자기가 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수명도 자기가 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해: 외부 사건이 내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각자가 각자의 심지(心地)를 책임진다.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이 전제하는 “나는 당한 것"이라는 자리를 해체한다. 현대적 이해: 냉혹한 선언이 아니다. 局(국)의 역동 안에서 가해자-피해자 프레임 자체를 해체하는 선언이다. 互爲하는 局(국) 안에서 그 책임 속에 希聖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格致藁는 150년 전에 이 문제의 답을 써놓았다.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


참고문헌

李濟馬, 『格致藁』, 이경성 검색본 입력, 1999. 本稿의 모든 格致藁 원문은 이 판본에 의거하였다.

李濟馬, 『東醫壽世保元』(신축판). 四端論·擴充論의 비박탐나 정의와 확충 경로는 이 판본에 의거하였다.

Thomas Hobbes, Leviathan, 1651. 자연상태론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개념.

Emmanuel Levinas, Totalité et Infini: essai sur l’extériorité, 1961. 타자의 얼굴(visage)과 비대칭적 윤리 개념.

René Girard, La Violence et le Sacré, 1972. 모방적 욕망의 삼각구조와 희생양 메커니즘.

Martin Buber, Ich und Du, 1923. 나-너(Ich-Du) 만남의 존재론.

John Bowlby, Attachment and Loss, 3 vols, 1969–1980. 애착이론의 안정/불안정 유형 분류.

Michel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1975.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억압 구조 분석.

Eric Berne, Games People Play, 1964. 교류분석의 게임(Game) 개념.

Gregory Bateson, Steps to an Ecology of Mind, 1972. 체계이론의 “확인된 환자(identified patient)” 개념.

王陽明, 『傳習錄』. 知行合一과 致良知 개념.

韓非子, 『韓非子』. 法·術·勢의 통치론.

1편: 최장혁, “格致藁는 이제마의 관계 의학이다”, 溯源齋, 2026. 2편: 최장혁, “장(場)이 역할을 배정한다 — 格致藁 팔괘잠의 관계역동론”, 溯源齋, 2026.



최장혁 | 한의사 · 동제당한의원 원장

연구 방법: DJD 다중 문헌 교차 리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