溯源齋

순자적 의학과 맹자적 의학 — 동동(東洞)의 만병일독설과 이제마(東武)의 사상의학을 읽는 하나의 방법

· 최장혁

핵심 요약

동동(東洞, 吉益東洞, 1702–1773)의 만병일독설과 이제마(東武, 李濟馬, 1837–1900)의 사상의학은 구조가 다르다. 같은 한의학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병이 무엇인지, 환자가 누구인지, 치유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답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선행 연구들은 고방파와 사상의학의 방법론적 차이, 병리론의 차이, 인체관의 차이를 다양하게 논했다. 본고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두 사람의 텍스트를 읽다 보면 자꾸 두 명의 중국 사상가가 떠오른다. 순자(荀子)와 맹자(孟子)다.

이것은 영향관계 주장이 아니다. 동동이 순자를 읽었다거나 이제마가 맹자를 계승했다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의학자였고, 둘 다 자기 환자를 앞에 두고 의학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 구축의 결과물을 읽으면 — 동동의 『類聚方』과 『医断』을,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과 『격치고』를 읽으면 — 전자에서는 순자적 구조가, 후자에서는 맹자적 구조가 드러난다. 그 발견을 정리한 것이 본고다.


1. 질문의 맥락

에도 고학파(古學派)와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비교한 선행 연구(최장혁, 2026a)는 소라이–동동–이제마 세 사람의 방법론적 차이를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자연/작위’ 분석틀로 정리했다. 만병일독설과 사상의학의 병리론을 직접 대비한 후속 연구(최장혁, 2026b)는 동동이 병(病)을 보고 이제마가 사람을 보았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格致藁 연구 삼부작(최장혁, 2026c, d, e)은 이제마의 의학이 관계론적 의학이라는 것, 팔괘잠이 관계역동론이라는 것, 이제마가 충신염해를 묘사하지 않은 것이 원시유학의 전통이라는 것을 논증했다.

이 논증들이 쌓인 위에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두 의학이 구조적으로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해석틀이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가.

본고의 답은 이것이다. 동동의 텍스트를 읽으면 순자가 보이고, 이제마의 텍스트를 읽으면 맹자가 보인다. 이 독해 방식이 두 의학의 차이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프레임이라는 것, 그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한 가지를 먼저 명확히 한다. 본고의 방법은 계통 증명이 아니라 구조적 독해다. 동동이 순자를 의식했는지, 이제마가 맹자를 의도적으로 가져왔는지 — 그것은 알 수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순자와 맹자는 2천 년 전 사람이다. 동동과 이제마는 의학자였지 철학사 계보를 따라간 학자가 아니다. 그들은 환자를 앞에 두고 의학을 만들었다. 다만 그 결과물을 읽으면 구조가 드러난다. 그 구조를 순자/맹자라는 해석틀로 읽는 것이 본고의 방법이다.


2. 동동의 텍스트를 읽으면

선언들

동동은 30세에 선언했다.

万病は唯一毒、衆薬は皆毒物なり。毒を似て毒を攻む。毒去って体佳なり。 (만병은 오직 하나의 독이며, 모든 약은 독물이다. 독으로써 독을 공격한다. 독이 제거되면 몸이 좋아진다.) — 吉益東洞, 30세 선언

『類聚方』 서문에서는 더 간결하게 정의했다.

医の学たる方のみ。 (의학이란 처방학이다.)

병인·병명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第一に治療者の考えるべきことは病気の要因をあれこれ憶測することではなく「治す」ことだ。第二に、病気を治すためには、病因も病名も無用であり、ただ目標があれば十分で、その目標を東洞は"毒"と名付けた。第三に、“毒"は後天的に体内に生じたものであり、多くは腹中にあるから腹診によって手に触れる実体として把握できる。 (첫째, 치료자가 고려해야 할 것은 병의 요인을 이런저런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이다. 둘째, 병인도 병명도 불필요하며, 목표만 있으면 충분하고, 그 목표를 동동은 “毒"이라 명명했다. 셋째, “毒"은 후천적으로 체내에 생긴 것으로 대부분 복중에 있으므로, 복진으로 손에 닿는 실체로서 파악할 수 있다.) — 花輪壽彦, 2010 요약

동동은 만병일독설의 텍스트 기원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万病の唯一毒なることを自得したるは、漸此八九年このかたなり。其のもとは呂氏春秋に鬱毒の論あり。 (만병이 오직 하나의 독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득한 것은 이 8~9년 이래의 일이다. 그 근원은 『呂氏春秋』에 울독(鬱毒)의 논이 있다.) — 吉益東洞, 『医事或問』 卷下

스스로 체득했다. 그 근원은 『呂氏春秋』다. 계보의 문제가 아니라 독해의 문제다.

이 텍스트에서 읽히는 구조

동동의 텍스트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드러난다.

병의 원인은 몸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체내에 쌓인 단일 실체다. 환자의 성정이 어떤지, 삶이 어떤지는 묻지 않는다. 복진으로 손에 잡히는 것만 다룬다. 치유는 그 실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환자는 처방의 대상이지 치유의 주체가 아니다.

이 구조를 읽고 순자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人之性惡,其善者僞也。凡禮義者,是生於聖人之僞,非故生於人之性也。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무릇 예의란 성인의 작위에서 생겨난 것이지, 인간의 본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 『荀子』 性惡篇

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順是,故爭奪生而辭讓亡焉。生而有疾惡焉,順是,故殘賊生而忠信亡焉。 (지금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 이익을 좋아함이 있어, 이것을 따르면 다툼과 탈취가 생기고 사양이 없어진다. 태어나면서 질투와 혐오가 있어, 이것을 따르면 잔인함과 해침이 생기고 충신이 없어진다.) — 『荀子』 性惡篇

순자는 단순한 억압론자가 아니다.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순자의 핵심은 욕망을 인정하되, 그것을 외부 구조(禮)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인간 내부에는 선의 자원이 없다. 치유는 외부에서 와야 한다.

동동이 순자를 읽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동동의 의학 구조는 이것과 대응된다. 인간 내부에 치유의 자원이 없다. 毒이 있을 뿐이다. 外部 약이 毒을 제거한다. 환자의 내면은 변수가 아니다. 이 구조가 순자적으로 읽힌다는 것 — 그것이 본고의 첫 번째 독해 결과다.

에도라는 지적 공기

한 가지를 덧붙일 수 있다. 동동과 동시대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가 있었다. 소라이는 에도 사상계에 특정한 공기를 만들어놓은 사람이다. 소라이의 경우는 직접적인 텍스트 연결이 있다. 그는 『読荀子』 4권을 직접 저술했고, 문인 우사미 신수이(宇佐美灊水)는 이렇게 증언했다.

其の著す所の辨道辨名論語徴等の書、間荀子を引いて以て義意を見はす有り。且つ晩年荀子を取ること多し。 (그가 저술한 辨道·辨名·論語徴 등의 책에는, 간간이 荀子를 인용하여 뜻을 드러낸 곳이 있다. 또한 만년에 荀子를 취하는 일이 많았다.) — 宇佐美灊水, 「読荀子を刻するの序」

소라이는 맹자의 사단론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면서 순자를 옹호했다.

惻隱羞惡は、皆仁義の性に本づくことを明らかにするのみ。其の実、惻隱は以て仁を尽くすに足らず、而して羞惡は未だ必ずしも義ならざる者有るなり。……思孟なる者は、聖門の禦侮なり。荀子なる者は、聖門の忠臣なり。 (측은·수오는 인의의 성에 근본한다는 것을 밝힌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측은이 인을 다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수오가 반드시 의인 것도 아니다. ……자사·맹자는 성문의 방벽이고, 荀子는 성문의 충신이다.) — 荻生徂徠, 『弁道』

소라이의 핵심 명제 또한 이러했다.

先王之道,先王之所造也,非天地自然之道也。 (선왕의 도는 선왕이 만든 것이다. 천지자연의 도가 아니다.) — 荻生徂徠, 『弁道』

도덕과 질서는 인간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제작된 것이다. 吉川幸次郎가 지적했듯, 에도 지식인들 사이에는 공통된 사상적 기반이 있었다. 송 이후 공허한 관념론에 대한 반발, 고전 텍스트의 언어에서 출발하는 방법론, 실체 없는 이름의 거부. 소라이는 그것을 제도론으로, 동동은 毒論으로 번역했다. 동동이 이 공기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공기 안에서 같은 방향의 구조가 나왔다.

花輪壽彦(北里大學 東洋醫學 종합연구소 소장)는 동동과 순자 正名篇의 관계를 직접 서술했다. “동동은 荀子의 사고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正名篇에는 실체를 수반하는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기술이 있으며, 동동은 이에 따라 ‘毒’이라는 말을 자신의 이론에 조합한 것으로 여겨진다”(花輪壽彦, 2010).

荀子 正名篇의 핵심 명제는 이것이다.

名無固宜,約之以命,約定俗成謂之宜,異於約則謂之不宜。名無固實,約之以命實,約定俗成,謂之實名。 (이름에는 원래 고정된 적합성이 없으며, 약정에 의해 명명하고 약정이 통용되면 적합하다 한다. 이름에는 원래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약정에 의해 실체를 명명하고 약정이 통용되면 실명이라 한다.) — 『荀子』 正名篇

실체에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동동은 그 이름을 “毒"으로 정했다. 張仲景의 의학에는 증상[名]과 처방[物]의 정확한 대응이 있었는데, 후세의 음양오행론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실체 없는 이름들을 만들어냈다. 허증·실증·음허·양항—복진으로 확인할 수 없는 관념들이다. 동동은 원전으로 돌아가 실체 있는 이름을 복원했다. 그 이름이 毒이다.


3. 이제마의 텍스트를 읽으면

선언들

이제마는 格致藁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格致而以亂藁爲言者,此藁非不格致,而隨見隨錄,文字未免草率,語意或涉蕩略,可以旁行於世而不可以正行於世者也。 (格致라 하면서 난고라 말한 것은, 이 원고가 格致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보이는 대로 기록하여 문자가 초솔함을 면하지 못하고, 세상에 방행할 수는 있으나 정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 格致藁 卷之一 서문

반성잠(反誠箴)에서는 이렇게 썼다.

篇名反誠,何謂耶?東武自幼至老,千思萬思,詐心無窮,行詐則箇箇狼狽,愈困愈屈,不得己反於誠而自警也。 (편명을 반성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동무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사만사에 사심이 무궁하여, 속이면 번번이 낭패를 당하고 더욱 곤혹스러워져서, 부득이 성실로 돌아가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 것이다.) — 格致藁 反誠箴

坤箴에서는 이렇게 썼다.

我有强力,入必趁我。我有才能,入必就我。我有權衡,入必倚我。我有識見,人必歸我。人旣趁我,我必行奪。人旣就我,我必行傲。人旣倚我,我必行凌。人旣歸我,我必行欺。 (내게 강력함이 있으면 사람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 사람이 나를 따르면, 나는 반드시 빼앗는다. 사람이 나에게 나아오면, 나는 반드시 오만해진다.) — 格致藁 坤箴

동의수세보원 확충론에서는 이렇게 썼다.

太陽人哀性遠散而怒情促急,哀性遠散則氣注肺而肺益盛,怒情促急則氣激肝而肝益削,太陽之臟局所以成形於肺大肝小也。 (태양인은 슬픔의 성(哀性)이 원대하게 퍼지고 노여움의 정(怒情)이 촉급하다. 애성이 원대하게 퍼지면 기가 폐로 모여 폐가 더욱 성해지고, 노정이 촉급하면 기가 간을 자극하여 간이 더욱 깎인다. 태양인의 장국이 폐대간소로 형성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擴充論

초본권은 이 메커니즘을 더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頻起怒而頻伏怒則兩脇暴盛而暴衰也,兩脇暴盛而暴衰則肝血傷也。乍發喜而乍收喜則胸重暴闊而暴窄也,胸重暴闊而暴窄則脾氣傷也。 (자주 노여움이 일어나고 자주 노여움이 가라앉으면 양협이 갑자기 성했다 갑자기 쇠한다. 양협이 갑자기 성했다 쇠하면 간혈이 상한다. 문득 기쁨이 발생했다 문득 기쁨이 수렴되면 흉중이 갑자기 넓어졌다 갑자기 좁아진다. 흉중이 갑자기 넓어졌다 좁아지면 비기가 상한다.) — 東醫壽世保元 草本卷 第三統

이 텍스트에서 읽히는 구조

이제마의 텍스트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드러난다.

병의 원인은 성정(性情)의 기울기에서 온다. 성정이 장부를 손상시키고, 장부의 불균형이 병이 된다. 환자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성정을 가졌는지가 진단의 핵심 변수다. 치유는 그 기울기를 교정하는 것이다. 환자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다.

이 구조를 읽고 맹자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智之端也。人之有是四端也,猶其有四體也。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다.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다.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다.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다. 사람에게 이 사단이 있는 것은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 孟子 公孫丑上

맹자의 핵심은 이것이다. 인간 내부에 이미 사단이 있다. 그것이 편착되거나 가려지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치유는 내부에서 온다. 확충(擴充)이 방법이다.

이제마가 맹자를 의식했는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마의 텍스트에는 맹자적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의수세보원 사단론에서 이제마는 이렇게 썼다.

聖人之臟四端也,衆人之臟亦四端也。太少陰陽之臟局短長四不同中有一大同,天理之變化也。 (성인의 장도 사단이고, 중인의 장도 사단이다. 태소음양의 장국 단장이 사불동 중에 일대동이 있으니, 천리의 변화다.) —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四端論

맹자에서 사단은 심(心)의 도덕감정이다. 이제마에게 사단은 폐비간신(肺脾肝腎) 사장부에 깃든 생리적 실체다. 맹자의 사단론이 이제마의 장부론 안으로 들어와 있다.

같은 사단론에서 이제마는 이어 썼다.

浩然之氣出於肺脾肝腎也,浩然之理出於心也。仁義禮智四臟之氣擴而充之則浩然之氣出於此也。鄙薄貪懦一心之慾明而辨之則浩然之理出於此也。 (호연지기는 폐비간신에서 나오고, 호연지리는 심에서 나온다. 인의예지 사장의 기를 확충하면 호연지기가 여기서 나오고, 비박탐나 일심의 욕을 밝히고 변별하면 호연지리가 여기서 나온다.) —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四端論

맹자의 호연지기가 이제마에게서 폐비간신의 기운으로 전환된다. 추구의 목표가 아니라 장부에 이미 내재한 것의 확충 — 이것이 이제마적 수양론의 구조다.

성명론에서 이제마는 맹자 盡心上의 핵심 명제를 이렇게 변형하여 인용했다.

存心養性然後,人皆可以爲堯舜之知也。修身立命然後,人皆可以爲堯舜之行也。 (마음을 보존하고 성을 기른 연후에야 사람이 모두 요순의 앎이 될 수 있고, 몸을 닦고 명을 세운 연후에야 사람이 모두 요순의 행이 될 수 있다.) —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性命論

맹자 원문(盡心上)은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 존심양성은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이제마는 “사천(事天)“을 지우고 그 자리에 “요순의 지와 행"을 놓는다. 하늘을 향한 도덕 형이상학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작동하는 실천의 의학이다.

맹자의 호연지기 논의에서 이제마의 수양론과 직접 공명하는 구절도 있다.

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勿助長也。……助之長者,揠苗者也;非徒無益,而又害之。 (반드시 일삼되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서 잊지도 말며, 억지로 자라게 하려 하지도 말라. ……억지로 자라게 하려는 자는 벼를 뽑아 올리는 자이니, 도움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친 것이다.) — 孟子 公孫丑上

이제마의 반성잠을 다시 읽으면 이것이 겹친다. 속이려 했는데 번번이 안 됐다. 어쩔 수 없이 성실해졌다. 억지로 성실해지려 한 것이 아니다. 勿助長의 구체적 모습이다.

格致藁 四戒에는 맹자 사단의 핵심 감정어들이 직접 등장한다.

先人有心 是非有心 退人有心 羞惡有心 瞻前有心 恭敬有心 按後有心 惻隱有心 先人當勢 是非奮發 退人立倫 羞惡持重 瞻前有大 恭敬壯健 按後有衆 惻隱縝密 (앞서는 자에게는 마음이 있고, 시비에는 마음이 있고, 물러서는 자에게는 마음이 있고, 수오에는 마음이 있다. ……수오는 무게를 지니고, 측은은 치밀함과 결합된다.) — 格致藁 四戒

맹자에서 측은·수오는 내면 감정의 자연 발생이다. 이제마에게 측은과 수오는 관계적 실천 역량으로 재규정된다. 감정이 아니라 행위 국면과 결합된다.


4. 두 텍스트가 드러내는 구조

동동의 텍스트와 이제마의 텍스트를 나란히 읽으면 구조의 차이가 드러난다.

범주 동동의 텍스트에서 읽히는 것 이제마의 텍스트에서 읽히는 것
인간 내부 치유 자원 없음 — 毒만 있음 사단(四端) 내재 — 이미 있음
병인 위치 후천적 체내 외래물 성정의 구조적 기울기
병인 모델 단일 (毒) 다층 (성정 편착 → 장부 손익)
진단 도구 복진 — 毒의 집결처 탐색 체형·성정·병증 관찰 — 성정 기울기 독해
치료 목표 독 제거 = 완치 독 제거는 시작 — 성정 교정이 본체
환자 위상 수동적 처방 대상 능동적 치유 주체
치유 불가 毒 제거 실패 성정 교정 의지 없음
철학적 색채 순자적 — 내부 불신, 외부 해결 맹자적 — 내부 자원, 확충으로 치유

이 표의 마지막 행이 본고의 귀결이다. 나머지 행들은 그 귀결에 이르는 독해의 과정이다.

한 가지를 먼저 짚어야 한다. 동동도 환자 내부를 본다. 복진은 신체 내부를 보는 행위다. 이제마도 처방을 쓴다. 외부 약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내부/외부의 구분은 지나친 단순화 아닌가.

이 반론은 타당하다. 그래서 본고의 논점은 내부와 외부 중 어느 쪽만 본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우선적 변수로 설정하느냐의 차이다. 동동의 복진이 찾는 것은 毒의 집결처다. 이제마는 복진을 하지 않는다 — 체형·얼굴·목소리·행동 방식으로 성정의 기울기를 읽는다. 진단 도구 자체가 다르다. 이 차이가 두 의학을 구조적으로 다른 것으로 만든다.

이 대비를 하나의 명제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동동은 인간 내부에 치유의 자원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외부 약(藥)으로 독을 제거했다. 이제마는 인간 내부에 이미 사단(四端)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수양이 치료였다.


5. 이제마가 물은 질문

동동의 의학과 이제마의 의학의 차이는 결국 이것이다.

동동은 물었다. 이 병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이제마는 물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格致藁 전체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비박탐나(鄙薄貪懦)가 왜 문제인가 —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충신염해(忠信廉解)를 이제마가 직접 묘사하지 않은 이유는 — 이상적 인간상을 설정하고 묘사하는 방식 자체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仁을 묻는 제자마다 다르게 답하고 끝내 정의를 내리지 않은 것과 같다. 있는 그대로 본다.

반성잠의 고백이 그것이다. 57년 동안 속이고 낭패당했다. 어쩔 수 없이 성실해졌다. 이것은 수양의 목표를 세운 사람의 언어가 아니다. 坤箴의 고백도 그것이다. 내가 강하면 반드시 빼앗는다 — 인간을 이상화하는 강박이 없다. 있는 그대로 본다. 이것이 格致藁의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이 맹자적 색채를 갖는다. 맹자의 사단론이 그러했다. 인간 내부에 이미 있는 것을 억지로 키우려 하지 말라.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라. 이제마의 不得己는 맹자의 勿助長과 공명한다.


6. 결론

동동의 텍스트를 읽으면 순자가 보인다. 이제마의 텍스트를 읽으면 맹자가 보인다.

이것은 영향관계 주장이 아니다. 동동이 순자를 읽었는지, 이제마가 맹자를 의식했는지 — 알 수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설령 읽었다 해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남는다. 맹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맹자를 읽으면서 공명했는지, 맹자를 읽어서 맹자적이 된 건지 — 이건 분리할 수 없다. 분리할 필요도 없다. 순자가 동동의 의학을 만든 게 아니다. 맹자가 이제마의 의학을 만든 게 아니다. 동동은 동동이고 이제마는 이제마다. 그 독창성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다만 그 결과물을 읽으면 구조가 드러난다. 동동의 구조는 순자적으로 읽힌다 — 인간 내부를 신뢰하지 않고, 외부 실체(毒)의 제거로 치유를 설계한다. 이제마의 구조는 맹자적으로 읽힌다 — 인간 내부에 이미 사단이 있고, 그 편착의 교정이 치유다. 순자/맹자는 그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언어다. 설명 도구이지 기원 주장이 아니다.

같은 한의학 전통에서 이렇게 다른 두 의학이 나왔다. 그 차이의 뿌리를 순자/맹자라는 해석틀로 읽을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 — 그것이 본고의 독해 결과다.


7. 한계와 추가 연구 질문

본고의 논증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첫째, 동동이 순자를, 이제마가 맹자를 의식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본고의 주장은 그보다 소박하다 — 텍스트를 읽었을 때 그 구조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독해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둘째, 소라이→동동의 지적 경유 경로가 직접적 영향관계인지, 동일한 지적 토양에서의 독립적 도달인지를 구분하는 사료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동동이 『呂氏春秋』에서 毒論의 기원을 끌어왔고 소라이가 같은 텍스트를 주해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것이 소라이를 통한 간접 경유인지 동일 텍스트의 독립적 독해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셋째, 본고는 임상의사의 관점에서 格致藁를 읽은 결과다. 그 관점이 이 독해를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이 독해의 한계이기도 하다.

추가 연구 질문:

  1. 동동이 읽은 荀子 텍스트가 확인된다면, 정명론(正名論)과 성악론(性惡論) 중 어느 편이 더 직접적으로 구조적 대응을 보이는가.
  2. 이기복(2014)이 제기한 “우주와 감응하는 몸에서 감정의 몸으로의 전환"이라는 테제와, 본고의 순자적 구조에서 맹자적 구조로의 전환 독해는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가.
  3. 에도 고방파 내에서 동동 이후의 전개—南涯, 浅田宗伯 등—는 이 구조적 특성을 심화시켰는가 혹은 수정했는가.
  4. 조선 내의 이제마 동시대인들이 이 구조적 차이를 인식했는가. 이제마의 비판적 독자들은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가.

참고문헌 및 원전 인용 카드

Source 1 [KM-원전]

  • Source: 格致藁 卷之一 서문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可以旁行於世而不可以正行於世” — 보이는 대로 기록한 것임을 선언. 格致藁 방법론의 핵심

Source 2 [KM-원전]

  • Source: 格致藁 反誠箴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千思萬思 詐心無窮 行詐則箇箇狼狽 不得己 反於誠” — 57년간의 자기고백. 수양의 목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도달한 성실함. 맹자 勿助長과의 공명

Source 3 [KM-원전]

  • Source: 格致藁 坤箴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人旣趁我 我必行奪” — 인간 본성의 편착을 이상화 없이 직시. 원시유학적 태도

Source 4 [KM-원전]

  • Source: 格致藁 四戒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羞惡持重 惻隱縝密” — 맹자의 측은·수오가 이제마에게서 관계적 실천 역량으로 재규정됨

Source 5 [JP-원전]

  • Source: 吉益東洞, 30세 선언 / 『類聚方』 서문
  • Author/Era: 요시마스 도도, 에도 18세기
  • Key point: “万病は唯一毒” / “医の学たる方のみ” — 만병일독설의 핵심 선언

Source 6 [JP-원전]

  • Source: 吉益東洞, 『医事或問』 卷下
  • Author/Era: 요시마스 도도, 에도 18세기
  • Key point: “其のもとは呂氏春秋に鬱毒の論あり” — 만병일독설의 텍스트 기원을 동동이 직접 밝힘. 계보가 아닌 독해의 결과

Source 7 [JP-원전]

  • Source: 宇佐美灊水, 「読荀子を刻するの序」
  • Author/Era: 우사미 신수이, 에도 18세기
  • Key point: “晩年荀子を取ること多し” — 소라이 만년의 순자 흡수를 문인이 직접 증언. 에도 지적 공기의 1차 사료

Source 8 [JP-원전]

  • Source: 荻生徂徠, 『弁道』
  • Author/Era: 오규 소라이, 에도 18세기
  • Key point: “先王之道 先王之所造也” / “荀子は聖門の忠臣なり” — 소라이의 순자 수용과 맹자 사단론 비판의 직접 원문

Source 9 [CS-원전]

  • Source: 荀子 性惡篇
  • Author/Era: 荀況, 전국시대
  • Key point: “人之性惡 其善者僞也” /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 동동 의학 구조의 철학적 색채를 드러내는 대응 텍스트

Source 10 [CS-원전]

  • Source: 荀子 正名篇
  • Author/Era: 荀況, 전국시대
  • Key point: “名無固宜 約定俗成” / “制名以指實” — 동동의 “毒” 명명과 구조적으로 대응되는 명실론

Source 11 [CS-원전]

  • Source: 孟子 公孫丑上 (사단)
  • Author/Era: 孟軻, 전국시대
  • Key point: “惻隱之心 仁之端也” /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 이제마 의학 구조의 철학적 색채를 드러내는 대응 텍스트

Source 12 [CS-원전]

  • Source: 孟子 公孫丑上 (호연지기)
  • Author/Era: 孟軻, 전국시대
  • Key point: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 이제마 不得己 수양론과 공명하는 원전

Source 13 [KM-원전]

  • Source: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四端論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聖人之臟四端也 衆人之臟亦四端也” / “浩然之氣出於肺脾肝腎也” — 맹자의 사단·호연지기가 이제마 장부론으로 전환된 원전

Source 14 [KM-원전]

  • Source: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性命論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存心養性然後 人皆可以爲堯舜之知也” — 맹자 盡心上의 변형 인용. 사천(事天) 삭제, 인간 실천으로 치환

Source 15 [KM-원전]

  • Source: 東醫壽世保元 卷之一 擴充論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哀性遠散則氣注肺而肺益盛 怒情促急則氣激肝而肝益削” — 성정→기→장부 대소 결정의 3단계 메커니즘

Source 16 [KM-원전]

  • Source: 東醫壽世保元 草本卷 第三統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조선 19세기 말
  • Key point: “頻起怒而頻伏怒則兩脇暴盛而暴衰 肝血傷也” — 감정 파동이 직접 장부 손상으로 이어지는 병리 메커니즘

Source 17 [JP-학술]

  • Source: 花輪壽彦, 「漢方医人列伝 吉益東洞」(NHK ラジオ, 2010)
  • Author/Year: 花輪壽彦, 北里大学東洋医学総合研究所
  • Key point: 동동과 荀子 正名篇의 구조적 대응 서술. “毒” 명명이 正名篇의 논리와 대응됨을 명시

Source 18 [JP-학술]

  • Source: 吉川幸次郎, 『仁斎・徂徠・宣長』, 岩波書店
  • Key point: 에도 지식인 공통의 사상적 기반 — 공허한 관념론 반발, 고전의 언어에서 출발하는 방법론. 동동이 호흡한 지적 공기

Source 19 [KR-학술]

  • Source: 이기복, 「동무 이제마의 의학 사상과 실천」,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14
  • Key point: 이제마 의학에서 병자의 능동적 의지 부각, 에도 고방파와의 비교. 본고는 이기복(2014)이 기술한 것의 구조적 이유를 독해의 방식으로 제시한다

연구 시리즈 링크


최장혁 | 한의사 · 동제당한의원 원장 · 연구 방법: DJD 다중 문헌 교차 리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