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당 최원장의 溯源齋

場이 役을 配定한다 — 『格致藁』 八卦箴의 關係力動 構造

· 최장혁

【표제지 / Title Page — 학회지 제출용 별지】

· 논문 종류: 원저 (Original Article) · 국문 제목: 場이 役을 配定한다 — 『格致藁』 八卦箴의 關係力動 構造 · 영문 제목: A Field Assigns the Role: The Relational-Dynamic Structure of Palgwaejam in Gyeokchigo · 저자: 최장혁¹ / Choi, Jang-hyuk¹ · 소속: ¹ 동제당한의원 / Dongjedang Korean Medicine Clinic, Incheon, Republic of Korea · 교신저자: 최장혁 (Choi, Jang-hyuk) — 인천광역시 동구 동산로 88 / Tel. 032-765-7733 / Fax. 032-773-7734 / E-mail. [email protected] · Running head: 八卦箴의 場 役配定 構造 · 공시사항: 본 논문은 학위논문이 아니며, 외부 연구비 지원 및 이해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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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bjectives This study reexamines the Palgwaejam (八卦箴, Eight-Trigrams Admonitions) in Volume 2 of Yi Je-ma’s Gyeokchigo (格致藁), proposing that the eight trigrams can be read not as a static typology of persons but as a structure in which a relational field assigns the role within a jeong-wi (情僞, false/exploitative relational disposition; deception, 欺詐, is its representative species).

Methods Using the 1940 first edition (edited by Han Du-jeong) as the base text, collated with Ji’s annotated translation (2001) and Lee’s Dongmu Yugo (1999), each passage was examined in four stages: original text, literal translation, annotation, and interpretation. The reading was situated against prior interpretations within Sasang studies (Jang et al., 1992; In, 1995) and the Yijing-based lineage (Kim, 1999; Lim, 2013–2024).

Results Three observations are presented, at the level of a diagnostic layer within the larger Palgwaejam structure (a generative schema and the fan-seong telos are treated in companion papers). First, the operative verbs 圖 (to plan) and 着 (to attach), with the formula 八卦定吉凶, suggest a dynamic rather than classificatory grammar; the trigrams may denote eight vectors of jeong-wi. Second, the four-tier Gon (坤) admonition indicates that a field can assign the deceiving role (我必行欺詐), while an inner layer of virtue (忠敬恭信) may sever that progression. Third, jonsim (存心) and susin (守身) appear to form an asymmetric praxis—not deceiving versus not being deceived—which the eight trigrams later align into a four-axis × two-pole matrix (developed in a companion paper).

Conclusions The Palgwaejam may be read as a structure in which roles are assigned by the field rather than by individual character, recovering a dynamic dimension that prior static interpretations did not develop. This field-based role assignment operates as a diagnostic layer beneath the text’s generative schema and its fan-seong (反誠) telos.

Key words Medicine, Korean Traditional; Philosophy, Medical; Interpersonal Relations; Deception; Personalit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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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Body】

Ⅰ. 서론

『格致藁』(격치고)는 李濟馬(이제마, 1837~1900)가 남긴 두 주요 저술 중 하나다. 『東醫壽世保元』(동의수세보원)이 체질별 병증과 처방의 임상 의학서라면, 『格致藁』는 인간 心性의 淸濁(청탁)이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는 텍스트다. 그 중에서도 八卦箴(팔괘잠)은 反誠箴(반성잠)과 함께 『格致藁』 卷2를 이루며, 『周易』(주역)의 八卦를 빌려 인간관계의 구조를 여덟 갈래로 나눈 부분이다. 인간 유형을 鄙薄貪懦(비박탐나)로 분석하는 부분은 卷3 獨行篇에 있다.

八卦箴은 통상 두 방식으로 읽혀왔다. 하나는 『周易』 卦象을 빌린 象數學的 차용이고, 다른 하나는 여덟 卦에 여덟 가지 인간 유형을 배속한 靜的(정적) 분류표다. 본고는 이 두 독법과 다른 길, 곧 力動(역동)의 독법을 제안한다.

이 정태적 독법은 선행연구에서 두 갈래로 나타난다. 첫째는 사상의학 내부의 직접 연구다. 『格致藁』 反誠箴을 정면으로 다룬 張賢鎭·宋正模·宋一炳(1992)은 反誠箴 八卦를 공간 좌표로 도식화하였다. 이 연구는 太極之心을 中央之心으로 두고 兩儀·四象·八卦의 분화 구조를 事心身物論과 결합하며, 八卦를 上下(身, 乾上-坤下)·左右(心, 离左-坎右) 축에 배치하고 道-慾 길항(道勝慾 ↔ 慾勝道)의 벡터로 읽었다. 나아가 이 입체적 좌표가 『東醫壽世保元』의 直升·橫升·放降·陷降 같은 氣의 동적 표출 개념으로 발전할 기초가 된다는 점까지 지적하였다. 이 좌표 도식과 存心·守身 분류는 본고의 출발 토대다. 다만 이 연구는 그 좌표를 靜的 좌표로 다루었고, 결론을 中庸 允執厥中의 形象化, 곧 上下左右의 한가운데(中)를 잡는 정적 이상으로 귀결시켰다. 八卦가 役을 配定하는 動力學으로는 전개하지 않았으며, 存心·守身을 卦에 배속하는 데 그쳐 그 비대칭(속이는 나 / 속는 나)은 다루지 않았다.

印昌植(1995)은 사상의학을 시스템 이론·사이버네틱스·정보이론으로 해석하였다. 이 연구는 力動(dynamics)·역동적 평형·等結果性(equifinality) 개념을 소개하였으나, 그 틀을 八卦/四象 구조 자체에는 적용하지 않고 한의학 일반의 辨證論治 설명에 사용하였으며, 결론을 靜態的 四元構造로 규정하였다. 역동의 언어를 갖춘 연구에서도 八卦는 정태로 읽힌 셈이다.

둘째 갈래는 『格致藁』를 『周易』의 卦圖로 읽는 易學的 독법이다. 金萬山(1999)이 『周易』의 관점에서 性命論을 분석한 이래, 林炳學(2013; 2014; 2015; 2022; 2024)은 性命論을 文王八卦圖에, 反誠箴 八卦를 伏羲八卦圖와 東武太極圖에 대응시키고, 易有太極節의 太極·兩儀·四象을 心·心身·事心身物로, 八卦를 仁義禮智 四德에 배속하는 체계를 축적하였다. 이 易學派의 독법은 卦象·卦圖의 형이상학적 대응을 통해 사상철학의 우주론적 근거를 밝히는 데 기여하였다. 다만 이 독법은 反誠箴 서문이 명시한 存心·守身의 비대칭, 곧 我必行欺詐와 人必行欺詐의 관계 구조에는 비교적 주목하지 않았다. 八卦를 四德에 배속하는 작업과, 八卦가 관계에서 情僞의 役을 配定하는 양상을 읽는 작업은 층위가 다르며, 본고는 후자에 해당한다.

본 논문은 같은 원문을 力動의 프레임으로 다시 읽는다. 八卦箴을 인물 유형론이 아니라 관계역동의 구조로 볼 수 있다는 것, 場(장)이 役을 配定한다는 것, 存心(존심)과 守身(수신)이 비대칭적 실천을 이룬다는 것을 韓斗正(한두정) 編 1940년 초간본 원문에 근거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결론을 앞세워 근거를 맞춘 것이 아니라, 1940 초간본 원문을 우선하고 그로부터 판단을 이끈다. 八卦箴이 함축하는 메타인지(眼孔)의 문제, 反誠箴의 수양론, 『東醫壽世保元』 병리와의 접합은 본고의 범위를 넘으며 후속 연구에서 다룬다.

다만 본고가 제시하는 場 役配定은 八卦箴 구조의 한 층 — 接觸面에서 情僞의 役이 어떻게 배정되는가라는 진단층 — 이다. 八卦가 왜 여덟인가의 생성 골격(繫辭 易有太極節)과 그 위에 선 反誠의 telos는 본 시리즈 후속편(4편 機勢取象, 3편 反誠)에서 전개된다. 본고는 그 구조의 토대로서, 場의 배정 메커니즘을 먼저 밝힌다.

Ⅱ. 연구 대상 및 방법

  1. 연구 대상(저본)

본 연구의 저본은 韓斗正 編, 『格致藁』(咸興: 德興印刷所 인쇄, 昭和15年[1940] 7월 5일 발행)이다. 이는 현전 最古 간본 계열의 초간 활자본으로, 검색본·역주본이 아니다. 卷2 反誠箴·八卦箴을 주 분석 대상으로 하되, 卷1 서문(『格致藁』 자기 규정)을 보조로 인용하였다. 원문 교감은 이 1940 초간본을 기준으로 하며(坤箴 “人必” 확정, 反誠箴 “不得已·而已矣” 정자 확정), 검색본의 이체자 오기는 정자로 바로잡았다. 번역·해석의 대조본으로 池圭鎔 역해 『東武 格致藁 譯解』(2001)와 李昌一 『東武遺稿』(1999)를 사용하였다.

  1. 분석 방법

각 卦의 원문에 대해 네 단계 절차를 적용하였다. ① 원문(原文): 1940 초간본 원문을 제시한다. ② 직역(直譯): 원문을 직역한다. ③ 주해(註解): 핵심 字義와 전거를 밝힌다. ④ 해석: 관계역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八卦 전체의 배치 논리는 反誠箴 서문(存心·守身 분류)과 太極 단락(兩儀=心身, 八卦=작동)을 축으로 재구성하였다.

  1. 용어 정의

본고의 핵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場(장)**은 두 사람이 맞닿는 관계의 역학적 마당으로, 개인의 의지에 앞서 役(역할)을 배정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다만 이 ‘場’은 서구 물리학·철학의 場(field) 개념을 외삽한 것이 아니라, 『格致藁』 원문에 이미 내재한 한자어들 — 발동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機勢(기세), 보전하거나 빠져드는 자리로서의 局(국)과 境(경), 그리고 坤箴 1층의 止·行·遇·決이라는 네 마당(四場) — 을 하나의 구조 개념으로 묶어 현대적으로 명명한 것이다. 본고가 場이라 부르는 것은 원문의 機勢·局·境·四場이 가리키는 동일한 관계적 마당이다. **情僞(정위)**는 관계의 참(情=眞心)을 가린 채 작동하는 거짓 처분의 총칭으로, 八箴의 유개념이다(총결부). 欺詐는 그 대표적 한 種이되, 坤箴의 奪(힘)·离箴의 黠(영악)·坎箴의 竊(은닉)처럼 言辭的 기만이 아닌 種을 포괄하기 위해 본고는 유개념으로 情僞를 쓴다. **存心(존심)**은 내가 情僞의 주체로 배정되는 場에서 거짓을 행하지 않는 실천이며(『孟子』 存其心에서 유래), **守身(수신)**은 내가 情僞의 대상으로 노출되는 場에서 거짓에 넘어가지 않는 실천이다(『大學』 修身과 달리 닦음이 아니라 지킴이다). 문헌·이론 연구이므로 인체·동물 대상 연구가 아니며, 별도의 연구윤리(IRB) 심의를 요하지 않는다.

Ⅲ. 결과

  1. 八卦는 유형이 아니라 情僞의 벡터로 읽을 수 있다

먼저 이제마 본인이 八卦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본다.

원문: 形理之取象 只是臆見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

직역: 形理(형리)에서 象을 취한 것은 다만 내 臆見(억견)일 뿐이니, 진실로 伏羲의 易象이 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해: 形理는 사물의 형체와 이치이며, 여기서는 八卦箴에서 卦象을 인간관계에 배속한 자신의 방법론을 가리킨다. 臆見은 자기 판단이다. 이제마는 『周易』의 우주론적 권위를 빌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八卦는 복희역의 정태적 象이 아니라, 관계의 역동을 담기 위해 빌린 그릇으로 이해된다.

다음으로, 八箴 전체를 닫는 총결의 구절을 본다. (反誠箴 序 자체 — 詐心·求其放心·克己復禮·四勿의 修養 구조 — 는 본 시리즈 3편에서 다룬다.)

원문: 乾坤离坎箴之情僞 我必行欺詐於人之機勢也 存心之戒也 艮兌震巽箴之情僞 人必行欺詐於我之機勢也 守身之戒也

직역: 乾坤离坎箴의 情僞(정위)는 내가 반드시 남에게 欺詐를 행하게 되는 機勢(기세)이니, 마음을 보존하는 경계(存心之戒)이다. 艮兌震巽箴의 情僞는 남이 반드시 나에게 欺詐를 행하게 되는 機勢이니, 몸을 지키는 경계(守身之戒)이다.

주해: 情僞는 眞心(情)과 거짓(僞)이 뒤섞인 관계의 상태다. 機勢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일어날 힘의 방향을 가리킨다. 機는 발동의 계기, 勢는 그 계기가 만드는 흐름이다. 정태적 유형의 언어라기보다 역동의 언어에 가깝다. 八箴의 내용을 묶는 유개념은 이 「情僞」이고, 그 작동을 「行欺詐의 機勢」로 푼다. 따라서 欺詐는 情僞의 대표 種이며, 八卦가 取象하는 것은 좁은 言辭的 기만이 아니라 관계의 참을 가린 일체의 거짓 機勢 — 情僞다.

이 총결은 8卦를 두 무리로 가른다. 乾坤离坎 4卦는 내가 속이게 되는 場(存心)이고, 艮兌震巽 4卦는 내가 속게 되는 場(守身)이다. 따라서 八卦箴의 8卦는 여덟 인간 유형이라기보다 情僞가 발생하는 여덟 방향의 벡터로 읽을 수 있다. “당신은 乾형 인간이다"가 아니라 “지금 이 관계는 乾의 機勢에 있다"가 八卦箴의 어법으로 보인다.

이 독법은 太極 단락의 원문으로 보강된다.

원문: 易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太極 心也 / 兩儀 心身也 / 四象 事心身物也 乾事之始也 兌事之終也 坤物之本也 艮物之末也 离心之急圖也 震心之緩圖也 坎身之先着也 巽身之後着也

직역: 易에 太極이 있어 兩儀를 낳고, 兩儀가 四象을, 四象이 八卦를, 八卦가 吉凶을, 吉凶이 大業을 낳는다. 太極은 마음(心), 兩儀는 心身, 四象은 事心身物이다. 乾은 일의 시작, 兌는 일의 끝, 坤은 物의 本, 艮은 物의 末, 离는 마음의 急圖, 震은 마음의 緩圖, 坎은 몸의 先着, 巽은 몸의 後着이다.

주해: 두 가지가 확인된다. 첫째, 兩儀는 心身이다(張賢鎭 1992; 印昌植 1995 교차 확인). 둘째, 八卦의 규정에 圖(도모)와 着(붙음)이라는 동사가 쓰인다. 离=心之急圖, 震=心之緩圖, 坎=身之先着, 巽=身之後着에서 圖와 着은 모두 작동을 가리키는 동사다. 八卦가 “무엇인” 정태적 유형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작동 양태로 규정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八卦定吉凶 역시 분류라기보다 동적 판정에 가깝다. 이 경우 太極은 우주론적 실체라기보다 我(나)와 他(타인)가 맞닿는 접촉면으로 이해된다. 八卦의 생성 도식(易有太極→兩儀→四象→八卦)은 본고에서 작동성의 근거로 쓰이지만, 그 도식 자체가 八卦의 생성 골격으로 기능하며 反誠箴 좌표·존심수신 분할과 정연히 맞물린다는 점은 4편(機勢取象)에서 4축×2극 매트릭스로 전개된다.

이 지점에서 본고의 독법은 易學派(金萬山 1999; 林炳學 2014)와 갈린다. 易學派는 太極節과 反誠箴 八卦를 仁義禮智 四德과 卦圖에 대응시켜 우주론적으로 읽었다. 본고는 同一 원문에서 圖·着의 작동성과 我必/人必의 비대칭에 주목하여 관계역동으로 읽는다. 두 독법은 대상 텍스트를 공유하되 초점이 다르다.

  1. 太極 좌표: 나와 타인이 맞닿는 면

八卦箴에는 명시적 공간 배치가 있다. 巽箴 下截 말미의 원문이 좌표를 직접 제시한다.

원문: 未來在天 天在上也 / 過去在地 地在下也 知行在我 我在左也 / 祿財在他 他在右也 一身立誠於昊天之下而中庸之道行於昊天之下 乾兌部位所以形於上也 萬物同胞於大地之上而大學之德行於大地之上 坤艮部位所以形於下也 整齊知行之術其理在左而可得之術必在於我 离震部位所以形於左也 平均財祿之權其理在右而可得之權必在於他 坎巽部位所以形於右也

직역: 未來는 하늘에 있으니 위에 있고, 過去는 땅에 있으니 아래에 있다. 知行은 나에게 있으니 왼쪽에 있고, 祿財는 남에게 있으니 오른쪽에 있다. (이하 각 부위의 형성 이유를 밝힌다.)

주해: 上下축은 시간(未來在天/過去在地), 左右축은 관계다. 知行在我는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행동하는 영역, 祿財在他는 자원이 타인 쪽에 놓인 영역이다. 중앙의 太極은 나와 타인이 만나는 현재다.

여기서 좌표축과 存心·守身은 서로 다른 두 분류다. 左/右(知行在我/祿財在他)는 공간축이지 存心·守身의 구분이 아니다. 存心·守身은 네 축 각각의 主(주)와 從(종)에서 갈린다. 存心 4卦(乾坤离坎)는 네 축의 主로 내가 情僞의 주체로 배정되는 場이고, 守身 4卦(兌艮震巽)는 네 축의 從으로 남이 나를 情僞의 대상으로 삼는 場이다. 各 卦에 붙은 往·遇·知·行·居·守·德·財는 卦象의 성질을 관계의 상황으로 재배속한 것으로(乾=往, 坤=居, 离=知, 坎=德, 兌=遇, 艮=守, 震=行, 巽=財), 앞의 圖·着 동사가 이 재배속의 작동성을 뒷받침한다.

  1. 場이 役을 配定하는 구조: 坤箴 4층

存心 4卦(乾坤离坎) 가운데 場의 역할배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坤箴이며, 1940 초간본은 이를 4층 구조로 명문화한다.

원문(제1세트, 4층 정본): [1층] 萬人各止 人趁强力 / 萬人各行 人就才能 / 萬人各遇 人倚權衡 / 萬人各決 人歸識見 [2층] 我有强力 人必趁我 / 我有才能 人必就我 / 我有權衡 人必倚我 / 我有識見 人必歸我 [3층] 雖有强力 若無忠心 / 雖有才能 若無敬心 / 雖有權衡 若無恭心 / 雖有識見 若無信心 [4층] 人旣趁我 我必行奪 / 人旣就我 我必行傲 / 人旣倚我 我必行凌 / 人旣歸我 我必行欺

직역: [1층] 萬人이 각자 멈추니 사람들은 强力을 쫓고, 각자 행하니 才能을 따르고, 각자 만나니 權衡에 기대고, 각자 결단하니 識見에 돌아간다. [2층] 내가 强力을 가지면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쫓고 … 識見이 있으면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3층] 비록 强力이 있어도 忠心이 없으면 … 識見이 있어도 信心이 없으면, [4층] 사람들이 이미 나를 쫓으면 나는 반드시 빼앗고(奪), 이미 나를 따르면 반드시 오만하고(傲), 이미 나를 의지하면 반드시 凌蔑하고(凌), 이미 나에게 돌아오면 반드시 속인다(欺).

주해: 趁·就·倚·歸는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 奪·傲·凌·欺는 자원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情僞의 양상이다. 4층 구조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1층에서 場(止·行·遇·決의 四場)이 먼저 설정되어 능력자에게 사람을 집결시킨다. 2층에서 場이 타인을 나에게 끌어들인다(人必). 3층은 忠·敬·恭·信의 內心의 德이 없을 때에만 4층으로 이행하는 조건절이다. 4층에서 德이 없으면 場이 나의 행위를 이끈다(我必). 必이 2층과 4층에 반복되되, 그 사이 3층에서 한 번 끊긴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작법이 우발적이지 않음은 같은 패턴이 제2세트(敦儉·質實·慇密·謹愼의 네 德)로 반복된다는 데서 드러난다.

이를 정리하면, 八卦箴의 중심 논점은 場의 구조가 情僞의 役을 이끌어낸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必의 반복은 도덕적 단죄라기보다 구조적 경향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조직심리학이 “권력이 부패한다"고 말하는 것과 견주면, 이 텍스트는 권력이라는 場이 부패하는 役을 끌어들이는 양상을 기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경향은 운명이 아니다. 3층의 忠·敬·恭·信이 있으면 4층은 발동하지 않는 것으로 서술된다.

  1. 場 결정과 存心의 절단

場의 경향과 그것을 끊는 存心이 한 단락에 함께 나타나는 곳이 坤箴 후반이다.

원문: 義心一同 無所不義 / 欲心一動 無所不欲 戰戰競競 可保其局 / 淫淫浸浸 還入其境 修止以止 百奪爭止 / 修行以行 百傲爭行 / 修遇以遇 百凌爭遇 / 修決以決 百欺爭決

직역: 義心이 한번 같아지면 義 아닌 바가 없고, 欲心이 한번 움직이면 欲 아닌 바가 없다. 戰戰競競하면 그 局을 보전하고, 淫淫浸浸하면 그 境에 다시 빠진다. 멈춤을 닦아 멈추면 百奪이 다투어 멈추고 … 결단을 닦아 결단하면 百欺가 다투어 멈춘다.

주해: 修(닦음)가 場의 경향(百奪·百傲·百凌·百欺)을 끊는 것으로 서술된다. 場이 役을 이끌되 存心(修)이 그 흐름을 돌릴 수 있다는 이중구조가 한 단락에 함께 제시되어 있다. 場의 경향과 存心의 절단이 동시에 명문화된 점은 이 텍스트가 단순한 결정론이 아님을 시사한다.

나머지 存心 3卦(乾·离·坎)도 같은 구조의 변주로 읽을 수 있다. 乾箴(獨往能成 不爲誑也)은 홀로 나아가는 場에서 능력자가 誑·誣의 機勢에 놓이는 경우를, 离箴(萬黠爭機 小黠自以爲黠則招災)은 경쟁의 場에서 自强의 과시가 災를 부르는 경우(自招災)를, 坎箴은 富貴·祿財의 場에서 名位와 畜積을 은밀히 사유화하는 役(竊·私)이 배정되는 경우를 다룬다. 坎箴 본문은 「君子愛貧」과 浩然之氣를 들고, 名位·畜積을 「天下之公器」로 규정하여 그 은밀한 私有(竊富竊貴 神心必怒)를 경계하며, 그 反으로 季次·原憲의 安貧을 둔다. 세 卦 모두 場이 情僞의 役을 배정하고 存心이 그것을 끊는다는 구조를 공유하며, 坤箴이 이를 4층으로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1. 存心과 守身의 비대칭

存心 4卦가 내가 情僞의 주체로 배정되는 場이라면, 守身 4卦(兌艮震巽)는 남이 나를 情僞의 대상으로 삼는 場이다. 反誠箴 총결이 이를 명시한다(我必行欺詐 / 人必行欺詐). 따라서 存心과 守身은 같은 情僞를 거부하되 방향이 다른 비대칭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存心은 내가 주체인 場에서 속이지 않는 것(마음의 문제)이고, 守身은 내가 객체인 場에서 속지 않는 것(몸의 문제)이다.

守身 4卦의 핵심은 각각 다음과 같다. 兌箴은 만남의 場에서 상대의 詭詐를 살피는 察詐(察乎詭詐)를, 艮箴은 黠한 자의 誘導에 미끼를 물지 않고 그치는 守止(智黠誘導不售·知足知止)를, 震箴은 제 雄武·材力을 함부로 드러내(行僞) 공격을 부르지 않도록 감추는 韜藏(自高其勇 怯必攻勇 ↔ 雄武藏之爲壯)을, 巽箴은 窮困의 處地에서 충동(狂)을 삼가고 견디는 忍隨(必有忍 其乃有濟)를 다룬다. 네 卦 모두 “남이 나를 情僞의 대상으로 삼는 場에서 넘어가지 않기"라는 守身의 과제를 공유한다.

8卦의 배치를 정리하면, 네 축(事·物·心·身) 각각이 存心(主)과 守身(從)을 한 쌍으로 갖는다. 事축의 乾(存心)·兌(守身), 物축의 坤(存心)·艮(守身), 心축의 离(存心)·震(守身), 身축의 坎(存心)·巽(守身)이다. 1940 초간본 서문의 분류(乾坤离坎=存心 / 艮兌震巽=守身)가 이 짝을 확정한다. 이 네 축(事物心身) 각각이 存心(主)·守身(從) 한 쌍을 이루는 구조는, 4편에서 經典 4축(中庸·大學·柳下惠·伯夷)과 결합한 4축×2극 매트릭스로 정식화된다.

Ⅳ. 고찰

  1. 四戒: 관계의 긴장이 서로를 시험한다

存心·守身 비대칭의 실천적 귀결로 볼 수 있는 것이 八卦箴 말미의 四戒(4가지 경계)다.

원문: 天下索我以誑圖我 無怪其誑 誑試汝誠 天下探我以詒凌我 無怪其詒 詒試汝正 天下極我以譎困我 無怪其譎 譎試汝修 天下覓我以佯窘我 無怪其佯 佯試汝一

직역: 천하가 나를 찾아 誑으로 나를 도모해도 그 誑을 이상히 여기지 마라. 誑이 너의 誠을 시험하는 것이다. (詒·譎·佯에 대해 동일 구조로 正·修·一을 시험한다.)

주해: 索·探·極·覓은 천하가 나에게 접근하는 방식, 誑·詒·譎·佯은 情僞의 양상, 誠·正·修·一은 응하는 덕목이다. 無怪가 네 번, 試가 네 번 반복된다. 남이 나를 속이는 일조차 나의 덕목을 시험하는 구조로 읽으라는 권고로 이해된다.

四戒의 구조, 곧 속임을 가해/피해로 귀속하지 않고 양측을 시험하는 관계로 보는 것은 坤箴의 場 役配定(我有强力 人必趁我 我必行奪)과 같은 논리 위에 있다. 이는 윤리적 판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기반을 개인에서 관계 구조로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1. 비교의 한 지점: 구조의 진단과 그 다음

이러한 『格致藁』의 구조론적 통찰은, 개인의 의지보다 관계 구조가 욕망과 폭력을 잉태한다고 본 근대 서구의 이론들과 흥미로운 접점을 지닌다. 그 한 예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이론이다. 지라르에게 욕망은 주체-모델-대상의 삼각 구조에서 발생하며 어느 개인의 의지로 환원되지 않는데, 욕망·폭력이 관계 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場이 役을 配定한다"는 독법과 통하는 면이 있다. 다만 둘의 차이도 분명하다. 지라르가 제시하는 출구가 희생양의 무고함을 드러내는 계시라면, 『格致藁』는 구조의 진단에 머물지 않고 그 안의 실천(存心·守身)을 함께 제시한다. 본고의 관심은 양자의 전면 비교가 아니라, 八卦箴의 場 役配定이 구조의 진단과 그에 대응하는 실천을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있다. 이제마 수양론과 융(C.G. Jung)·서양 이론의 본격적 비교는 별도의 과제로 남긴다.

  1. 연구의 의의와 한계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상의학 내부 선행연구(張賢鎭 1992; 印昌植 1995)가 정태적으로 다룬 八卦箴을, 1940 초간본 원문(機勢·情僞·圖·着·八卦定吉凶)에 근거하여 관계역동의 구조로 다시 읽었다. 둘째, 易學派(金萬山 1999; 林炳學 2013–2024)가 八卦를 四德·卦圖에 대응시키면서 비교적 다루지 않은 存心·守身 비대칭(我必/人必)을 텍스트 내적 구조로 검토하였다. 셋째, 坤箴 4층 구조를 통해 場의 역할배정과 存心의 절단이 한 단락에 공존함을 보였다.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고는 1940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異本 간 전면 교감은 수행하지 못하였다. 둘째, 八卦箴이 함축하는 메타인지(眼孔)의 문제, 反誠箴의 수양론(反誠과 완성의 구조), 『東醫壽世保元』 병리와의 접합은 본고에서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八卦箴의 관계역동 구조를 토대로 후속 연구에서 별도로 다룰 주제다. 셋째, 본고가 제시하는 場 役配定은 八卦箴 구조의 진단층이며, 八卦가 왜 여덟인가의 생성 골격과 反誠의 telos는 후속편(4편·3편)이 다룬다.

Ⅴ. 결론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八卦箴은 인물 유형의 분류표라기보다 情僞가 발생하는 여덟 방향의 벡터로 읽을 수 있다. 圖·着의 작동 동사와 八卦定吉凶의 동적 판정이 그 근거가 된다.

둘째, 坤箴 4층 구조는 場의 구조가 情僞의 役을 이끌어내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도덕적 단죄라기보다 구조적 경향에 가까우며, 동시에 3층의 忠·敬·恭·信과 修止以止 百奪爭止가 보이듯 存心(修)이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다는 이중구조를 갖는다.

셋째, 存心과 守身은 비대칭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存心은 속이지 않는 것(마음), 守身은 속지 않는 것(몸)이며, 1940 초간본 서문(乾坤离坎=存心 / 艮兌震巽=守身)이 이 분류를 확정한다. 네 축(事·物·心·身) 각각이 存心(主)과 守身(從)을 한 쌍으로 갖는다.

요컨대 八卦箴은 관계의 場이 情僞의 役을 배정하고 個人의 실천(存心·守身)이 그에 응하는 구조로 읽을 수 있다. 본고가 밝힌 것은 그 구조의 진단층 — 場이 어떻게 役을 배정하는가 — 이며, 八卦가 여덟인 생성 골격과 그 위의 反誠 telos는 후속편(4편·3편)이 채운다. 이 독법은 선행연구가 정태적으로 다룬 텍스트의 역동적 차원을 드러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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