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地가 眼孔을 가둔다 — 『格致藁』 兌箴·獨行篇의 메타인지 構造와 循環的 限界
【표제지 / Title Page — 학회지 제출용 별지】
· 논문 종류: 원저 (Original Article) · 국문 제목: 心地가 眼孔을 가둔다 — 『格致藁』 兌箴·獨行篇의 메타인지 構造와 循環的 限界 · 영문 제목: The Mind-Ground Confines the Eye: The Metacognitive Structure and Its Circular Limit in the Tae Admonition and Dokhaeng Chapter of Gyeokchigo · 저자: 최장혁¹ / Choi, Jang-hyuk¹ · 소속: ¹ 동제당한의원 / Dongjedang Korean Medicine Clinic, Incheon, Republic of Korea · 교신저자: 최장혁 (Choi, Jang-hyuk) — 인천광역시 동구 동산로 88 / Tel. 032-765-7733 / Fax. 032-773-7734 / E-mail. [email protected] · Running head: 眼孔의 循環的 限界 · 공시사항: 본 논문은 학위논문이 아니며, 외부 연구비 지원 및 이해관계가 없다. 본고는 八卦箴을 관계역동으로 읽은 선행 연구(저자, 「場이 役을 配定한다」, 본 시리즈 제1편)에 이어지는 제2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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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bjectives This study reexamines the concept of angong (眼孔, the “eye-aperture”) in the Tae admonition (兌箴, Volume 2) and the Dokhaeng chapter (獨行篇, Volume 3) of Yi Je-ma’s Gyeokchigo (格致藁). It proposes that Yi reduces the whole of Confucian self-cultivation to a single act of metacognition—the discernment of deception (察乎詭詐, chal-ho-gwesa)—whose instrument is the angong, and that this metacognition carries a circular limit which Yi himself made explicit.
Methods Using the 1940 first edition (edited by Han Du-jeong) as the base text, collated with Ji’s annotated translation (2001) and Lee’s Dongmu Yugo (1999), passages were examined in four stages (original text, literal translation, annotation, interpretation), building upon the relational-field reading established in the first paper of this series.
Results Three findings are presented. First, the Tae admonition relocates the center of cultivation—shifting all eight items of the Great Learning onto a single act, the discernment of deception—from the practice of virtues to perception itself. Second, the four-type angong passage of the Dokhaeng chapter specifies the disguise structure—clear on the surface, turbid at the core—that perception must penetrate; the distortion is largely optical rather than volitional. Third, the metacognition is circularly limited: the observer’s own sincerity governs what the observer can perceive (己誠未盡則人僞難悉), so a turbid mind cannot perceive its own turbidity. Yi designated the Dokhaeng chapter as “lamp and firefly, not sun and moon,” acknowledging this as the system’s blind spot, while locating the point of intervention in the practice of returning to sincerity (反誠).
Conclusions The metacognition of Gyeokchigo is at once the foundation of cultivation and a self-limiting structure. The limit is formally comparable—as analogy, not identity—to the indistinction of Ego and Self in Jung; Yi’s response is not a complete solution but the practice of returning to sincerity (反誠), which is reserved for the next study.
Key words Medicine, Korean Traditional; Philosophy, Medical; Metacognition; Cognition; Decepti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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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Body】
Ⅰ. 서론
『格致藁』(격치고)는 李濟馬(이제마, 1837~1900)의 두 주요 저술 중 하나로, 『東醫壽世保元』(동의수세보원)이 체질별 병증과 처방의 임상 의학서라면 『格致藁』는 인간 心性의 淸濁(청탁)이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는 텍스트다. 卷2의 反誠箴(반성잠)·八卦箴(팔괘잠)이 관계의 구조와 수양을, 卷3 獨行篇(독행편)이 인간 유형(鄙薄貪懦, 비박탐나)과 知人(지인)·正心不動心(정심부동심)의 이치를 다룬다. 본고가 다루는 兌箴(태잠)은 八卦箴 守身(수신) 4卦의 하나이며, 眼孔(안공)론은 卷3 獨行篇에 있다.
본 시리즈의 선행 연구(제1편)는 八卦箴을 인물 유형론이 아니라 관계역동의 구조로 읽어, 場(장)이 欺詐(기사)의 役(역)을 配定(배정)한다는 것과 存心(존심)·守身이 비대칭적 실천(속이지 않기/속지 않기)을 이룬다는 것을 1940 초간본 원문에 근거하여 고찰하였다. 그 논문은 결론에서 八卦箴이 함축하는 메타인지(眼孔)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후속 연구로 미루었다. 본고는 그 유보된 주제, 곧 守身이 작동하기 위한 인식의 토대인 眼孔을 다룬다.
문제의 출발점은 兌箴의 한 선언이다. 이제마는 『大學』(대학) 8조목(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전부를 단 하나, 察乎詭詐(궤사를 살핌)로 모은다. 성리학이 천 년간 수양의 조목을 분화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온 작업에서, 이제마는 그 무게중심을 察(찰, 살핌) 하나로 옮긴 셈이다. 存心이든 守身이든 그것이 작동하려면 먼저 보는 눈이 있어야 하며, 그 눈이 眼孔이다. 그런데 이 도구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보는 도구가 心地(심지)에 의해 결정되므로, 心地가 탁하면 眼孔도 흐려지고, 흐린 눈은 자기가 흐린 줄을 보지 못한다. 본고의 핵심 주장은 이 순환적 한계가 본고의 외부 해석이 아니라 이제마 본인이 獨行篇 序에서 명시한 텍스트 내적 진술이라는 것이다.
선행연구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사상의학 내부에서 張賢鎭·宋正模·宋一炳(1992)은 反誠箴의 철학사상을 다루었고, 印昌植(1995)은 시스템 이론으로 사상의학을 해석하였다. 易學派의 金萬山(1999)과 林炳學(2013; 2022)은 性命論·反誠箴 八卦를 卦圖·四德에 대응시키는 체계를 축적하였다. 이들 연구는 『格致藁』의 구조와 우주론적 근거를 밝히는 데 기여하였으나, 兌箴의 察乎詭詐를 메타인지 능력으로, 眼孔을 그 도구로, 그리고 그 도구의 순환적 한계를 텍스트 내적으로 분석한 작업은 비교적 드물다. 獨行篇의 知人·正心不動心 역시 易學·철학의 틀에서 읽혀온 반면, 眼孔 4유형 구절과 “己誠未盡則人僞難悉"의 자기 한계 진술을 하나의 메타인지 구조로 묶어 읽은 시도는 적었다. 본고는 후자에 해당한다.
본 논문은 兌箴과 獨行篇의 원문을 교차하여, 察의 선언(兌箴) — 察의 대상(獨行篇 眼孔 4유형) — 察의 한계(獨行篇 序)의 순서로 메타인지 구조와 그 순환적 한계를 고찰한다. 융(C.G. Jung)의 자아(Ego)·자기(Self) 구도와의 비교는 형태적 유비의 한 문단으로 절제하며(본격 비교는 본 시리즈 후속 연구), 反誠箴의 수양론과 『東醫壽世保元』 병리와의 접합은 본고의 범위를 넘으므로 후속 연구에서 다룬다.
Ⅱ. 연구 대상 및 방법
- 연구 대상(저본)
본 연구의 저본은 韓斗正 編, 『格致藁』(咸興: 德興印刷所 인쇄, 昭和15年[1940] 7월 5일 발행)이다. 이는 현전 最古 간본 계열의 초간 활자본으로, 검색본·역주본이 아니다. 卷2 八卦箴의 兌箴과 卷3 獨行篇(眼孔 4유형 구절 및 篇 序의 知人·正心不動心·자기 한계 진술)을 주 분석 대상으로 하고, 卷2 反誠箴 서문과 坤箴(곤잠)을 보조로 인용하였다(後者는 제1편에서 場 役配定의 근거로 분석한 부분이다). 번역·해석의 대조본으로 池圭鎔 역해 『東武 格致藁 譯解』(2001)와 李昌一 『東武遺稿』(1999)를 사용하였다.
- 분석 방법
각 원문에 대해 네 단계 절차를 적용하였다. ① 원문(原文): 1940 초간본 원문을 제시한다. ② 직역(直譯): 원문을 직역한다. ③ 주해(註解): 핵심 字義와 전거를 밝힌다. ④ 해석: 메타인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兌箴(察의 선언) · 獨行篇 眼孔 4유형(察의 대상) · 獨行篇 序(察의 한계) · 場의 선택(眼孔의 사전 기능)의 네 절로 논리를 재구성하였다.
- 용어 정의
眼孔(안공)은 글자 그대로 “눈의 구멍"으로, 心地가 지각으로 드러나는 습관과 방향을 가리킨다. 본고가 이를 메타인지의 도구로 명명하되, 이는 서구 인지심리학의 metacognition 개념을 외삽한 것이 아니라 원문에 이미 내재한 察(살핌)·眼孔·心地 淸濁이 가리키는 동일한 인식 구조를 현대적으로 명명한 것이다. 察(찰)은 관계에서 속임을 알아차리는 메타적 살핌이다. 心地 淸濁(심지 청탁)은 마음 바탕의 맑고 흐림으로, 眼孔의 명암을 규정하는 상위 조건이다. 순환적 한계(循環的 限界)는 보는 주체의 맑기가 보는 능력을 규정하여, 보는 주체가 자기 자신의 맑기를 직접 검증할 수 없는 구조를 가리킨다. 본고는 제1편에서 정의한 場·存心·守身을 전제하며, 그 중 守身의 인식 토대를 다룬다. 문헌·이론 연구이므로 인체·동물 대상 연구가 아니며, 별도의 연구윤리(IRB) 심의를 요하지 않는다.
Ⅲ. 결과
- 兌箴: 修養의 무게중심을 察乎詭詐(메타인지)로 옮긴다
兌은 못(澤)이자 기쁨이다. 兌箴에서 이제마는 만남의 場에서 상대의 詭詐를 살피는 守身을 다루는데, 그 첫 선언이 『格致藁』 관계론에서 가장 강한 집약이다.
원문: 格物致知 都在於察乎詭詐 誠意正心 都在於察乎詭詐 修身齊家 都在於察乎詭詐 治國平天下 都在於察乎詭詐 怨天尤人 必在於不察詭詐 反道敗德 必在於不察詭詐
직역: 사물을 궁구하고 앎에 이름(格物致知)이 모두 詭詐를 살피는 데 달려 있다.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誠意正心)이 모두 詭詐를 살피는 데 달려 있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함(修身齊家)이 모두 詭詐를 살피는 데 달려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함(治國平天下)이 모두 詭詐를 살피는 데 달려 있다.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함(怨天尤人)은 반드시 詭詐를 살피지 못하는 데 있다. 도에 어긋나고 덕을 무너뜨림(反道敗德)은 반드시 詭詐를 살피지 못하는 데 있다.
주해: 詭詐(궤사)는 속이고 속는 것으로 八卦箴의 欺詐와 같은 뜻이다. 察(찰)은 살핌, 곧 메타적 관찰이다. 『大學』 8조목(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이제마는 남김없이 察乎詭詐 하나로 모은다. “都在於”(모두 ~에 달려 있다)가 네 번, “必在於”(반드시 ~에 있다)가 두 번 반복되어 예외 없음을 선언한다.
성리학은 수양의 조목을 격물·치지에서 평천하까지 분화하고 그 사이의 단계를 천 년간 정교화해왔다. 이제마는 그 8조목을 察 하나로 되돌린다. 이를 환원이라 부를 수 있으나, 정확히는 8조목의 폐기가 아니라 수양의 무게중심을 德目의 실천에서 지각(보는 눈) 자체로 옮긴 재배치(再配置)에 가깝다. 무엇을 행하느냐 이전에, 관계의 진위를 보느냐 못 보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제1편에서 兌箴은 만남의 場에서 상대의 詭詐를 살피는 守身(察乎詭詐)으로 분석되었거니와, 그 察을 수행하는 도구가 바로 다음 절의 眼孔이다.
- 獨行篇 眼孔 4유형: 察이 꿰뚫어야 할 위장 構造
察乎詭詐가 모든 수양의 전제라면, 무엇을 察해야 하는가. 그 답이 卷3 獨行篇의 眼孔론에 있다. 獨行篇은 비박탐나 각 유형의 눈이 어디를 향해 있고 무엇에 익숙하며 무엇에 물들어 있는지를 기술한다.
원문: 鄙者之眼孔 玩於廉隅而慣於懶怠 薄者之眼孔 狎於恩信而褻於貞諒 貪者之眼孔 弄於忠義而能於奸譎 懦者之眼孔 狃於賢能而狡於勤篤
직역: 鄙者(비자)의 眼孔은 廉隅(염우, 청렴·모범)에 익숙하나 懶怠(나태)에 물들어 있다. 薄者(박자)의 眼孔은 恩信(은신, 은혜·신뢰)에 친숙하나 貞諒(정량, 성실·믿음직함)을 업신여긴다. 貪者(탐자)의 眼孔은 忠義(충의)를 가지고 놀되 奸譎(간휼, 간사함)에 능하다. 懦者(나자)의 眼孔은 賢能(현능)에 길들여져 있되 勤篤(근독, 근면·독실함)한 자에게 교활하다.
주해: 眼孔은 글자 그대로 “눈의 구멍"으로, 心地가 눈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다. 玩(완)·狎(압)·弄(롱)·狃(뉴)는 모두 “익숙해져 함부로 대하다"는 동사군이되 뉘앙스가 다르다 — 玩은 갖고 놀듯 익숙함, 狎은 가까이하여 무례함, 弄은 농락하듯 가지고 놂, 狃는 길들여져 안이함이다. 짝을 이루는 慣(관, 물듦)·褻(설, 업신여김)·能(능)·狡(교, 교활함)는 뒤쪽 속성에 대한 태도다.
네 유형의 구조는 동일하다. 淸(청)한 것을 겉에 두고 濁(탁)한 것을 속에 둔다. 鄙者는 청렴에 익숙한 듯하나 실은 나태에 물들어 있고, 薄者는 은혜를 내세우나 성실함을 깔보며, 貪者는 충의를 가지고 놀되 간사함에 능하고, 懦者는 현능에 익숙한 듯하나 부지런한 자를 교활하게 부린다. 이것이 비박탐나의 위장 구조이며, 兌箴이 察하라 한 詭詐의 구체적 형태다. 주목할 점은 이 왜곡이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眼孔은 이미 그 방향으로 굳어 있어, 보는 자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선택하지 못한다. 왜곡은 의지가 아니라 광학(光學)에 가깝다. 다만 이는 설명적 비유일 뿐, 의지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詭詐를 察한다는 것은 상대의 도덕을 판정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眼孔이 어느 방향으로 굳어 있는지를 읽는 일이다.
- 眼孔의 循環的 限界 — 이제마 본인의 명시
여기서 『格致藁』 체계의 유일한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察의 도구가 眼孔이고 眼孔의 명암은 心地의 청탁이 결정한다면, 心地가 탁할 때 眼孔도 흐려지고 察도 부정확해진다.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순간은 欺詐의 기세에 올라탄 바로 그때 — “나는 지금 속이려 하고 있다"는 자각 — 이다. 보는 주체 자신이 탁해져 있을 때, 그 탁함을 보는 일이 가장 어렵다.
이 한계를 이제마는 본인이 먼저 명시한다. 獨行篇 序가 그것이다.
원문: 此篇果正心不動心者耶 曰此篇發明知人然後正心不動心之理也 非眞能盡知人正心不動心者也 盖己誠未盡則人僞難悉 己僞猶存則人誠亦疑 惟天下至誠不僞能盡其性者然後可以悉人之誠僞 如此者堯舜也 孔孟也 衆聖也 日月照耀天下 燈燭照耀一室 螢火照耀片隙 若此篇者固燈燭與螢火之比也 然禁姦邪反眞實 不爲無助於昏夜之時俗
직역: 이 篇이 과연 正心不動心에 이른 것인가. 답하되, 이 篇은 사람을 안 뒤(知人)에 正心不動心하는 이치를 밝힌 것이지, 진실로 知人·正心·不動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자기의 誠이 다하지 못하면 남의 僞를 다 알기 어렵고, 자기의 僞가 아직 남아 있으면 남의 誠도 의심하게 된다. 오직 천하의 지극히 성실하여 거짓이 없이 그 性을 다할 수 있는 자라야 사람의 誠僞를 다 알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자는 堯舜이고 孔孟이고 뭇 성인이다. 해와 달은 천하를 비추고, 등불은 한 방을 비추고, 반딧불은 한 틈을 비춘다. 이 篇과 같은 것은 진실로 등불과 반딧불에 비할 것이다. 그러나 간사함을 금하고 진실을 회복하는 데(禁姦邪反眞實) 어두운 밤의 시속에 도움이 없지 않다.
주해: 첫 문장은 이 篇이 正心不動心을 다 이룬 경지가 아니라 그 이치를 밝힌 것임을 스스로 한정한다. 핵심은 “己誠未盡則人僞難悉 己僞猶存則人誠亦疑"이다 — 知人(타인의 誠僞를 앎)의 능력이 보는 자 자신의 誠/僞에 갇힌다. 자기의 誠이 모자라면 남의 거짓을 다 못 보고, 자기 안에 거짓이 남아 있으면 남의 진실조차 의심한다. 悉人之誠僞(사람의 誠僞를 다 앎)는 至誠不僞한 성인(堯舜·孔孟)에게만 가능하다. 日月은 성인의 빛, 燈燭·螢火는 『格致藁』가 스스로를 둔 자리다.
이 단락은 본고의 핵심 발견을 뒷받침한다. 眼孔의 순환적 한계는 본고가 바깥에서 부과한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 내적 자기 진술이다. 이제마는 知人이 보는 자의 도덕적 맑기에 의존하며, 그 맑기를 보는 자 자신이 보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 체계를 해와 달이 아니라 등불·반딧불로 규정하였다. 이는 체계의 맹점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다. 동시에 “然禁姦邪反眞實 不爲無助於昏夜之時俗"이 보이듯, 그 한계가 곧 무용을 뜻하지는 않는다 — 성인의 완전한 빛이 아니어도 어두운 시속에서 간사함을 금하고 진실을 회복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순환으로 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心地의 청탁이 眼孔의 명암을 결정하고, 眼孔의 명암이 察의 정확도를 결정하며, 察의 정확도가 存心·守身의 성패를 결정하고, 存心·守身의 성패가 다시 心地의 청탁으로 되먹임된다. 이 순환에는 외부에서 진입할 시작점이 없다. 이미 탁한 자는 자기가 탁한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格致藁』의 수양론은 도덕적 권고(“착하게 살라”)가 아니라 인식의 생존론으로 귀결된다 — 眼孔을 맑게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 수양이며, 眼孔이 맑아야 場을 바로 읽고, 場을 바로 읽어야 存心·守身이 성립한다. 다만 이 순환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이제마는 그 실질적 개입점을 反誠(돌아옴)으로 제시하는데, 反誠은 순환 바깥에서 주어지는 외력이 아니라 순환 내부의 변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실천의 구조는 본 시리즈 후속 연구의 주제다.
- 眼孔의 사전 기능: 場의 선택 — 제1편 場 役配定과의 접합
지금까지의 察은 모두 場에 들어간 뒤의 인식이다. 그러나 한 걸음 앞에 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 이 場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제1편에서 보였듯 場이 만들어지면 役이 배정되고 役이 배정되면 欺詐의 기세가 생긴다(坤箴: 我有强力 人必趁我 我必行奪).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存心·守身은, 들어가서는 안 될 場에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眼孔의 사전 기능이다. 兌箴의 察乎詭詐는 관계 안에서 상대의 속임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이 場의 구조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읽는 일이기도 하다. 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어떤 場이 만들어질지, 그 場에서 나는 어떤 役에 배정될지, 그 役에서 내 存心·守身이 버틸 수 있을지를 미리 가늠하는 것이다. 獨行篇의 眼孔 4유형 분석은 관계가 시작된 뒤 상대를 식별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의 眼孔이 어느 방향으로 굳어 있는지를 읽어, 들어가서는 안 될 場을 회피하는 도구다.
개입의 시점이 서양 심리학의 통상 전략과 다르다. 경계(boundary) 설정이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훈련은 대체로 관계가 형성된 뒤의 복구 전략 — 이미 착취적 관계에 들어간 뒤의 거절 훈련, 이미 소진된 뒤의 자신감 회복 — 인 반면, 眼孔론은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場의 구조를 읽는 사전 메타인지에 무게를 둔다. 다만 여기서도 3절의 순환적 한계가 그대로 작동한다. 眼孔이 흐리면 場의 선택도 틀린다. 탁한 눈은 들어가서는 안 될 場을 도리어 매력적으로 본다. 그러므로 결론은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 수양이 먼저다. 눈이 맑아야 場을 읽고, 場을 읽어야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Ⅳ. 고찰
- 무게중심 이동이라는 사건: 성리학과의 거리
兌箴의 집약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축약이 아니다. 성리학은 수양을 德目의 그물로 분화하고 그 그물코 사이의 단계를 정교화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답해왔다. 이제마는 그 그물을 察 하나로 묶는다. 행위의 조목 이전에 지각의 정확성이 모든 것을 가른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 환원은 8조목의 폐기가 아니다. 이제마는 格物致知에서 平天下에 이르는 실천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실천이 성립하기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으로 察을 격상시킨 것이며, 보는 눈이 흐리면 어떤 조목도 헛디디는 까닭에 察은 다른 조목과 경합하는 또 하나의 항목이 아니라 그것들의 선결 조건이다. 이는 수양의 장소를 서재의 조목에서 관계의 지각으로 옮기는 작업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이동에는 대가도 따른다. 수양 전체가 보는 눈 하나에 걸리는 만큼, 그 눈이 흐릴 때의 위험도 그만큼 집중된다. 본고 3절의 순환적 한계는 바로 이 집중된 위험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마가 이 위험을 모르지 않았음은 그가 獨行篇 序에서 자기 체계를 등불·반딧불로 한정한 데서 드러난다.
- 순환적 한계의 한 비교 지점: 융의 자아·자기 (형태적 유비)
보는 주체가 자기 자신의 맑기를 직접 검증할 수 없다는 이 구조는, 분석심리학에서 자아(Ego)가 자기(Self)를 온전히 대상화하지 못한다고 본 구도와 형태상 통하는 면이 있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이되 그 자신을 포함하는 전체(Self)를 바깥에서 조망할 수 없으므로, 자기가 자아를 통해 드러나는지 여부를 자아가 스스로 확정하기 어렵다(Jung, 1968). 다만 이 대응은 형태적 유비이지 개념의 1:1 등치가 아니다 — 心地 淸濁의 수양론적 전제와 자아·자기의 원형론적 전제는 출발과 목표가 다르며, 둘을 같은 것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또한 결정적 차이가 있다. 『格致藁』는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反誠이라는 실천을 함께 제시한다. 이제마의 反誠과 융의 개성화(individuation)를 본격적으로 견주는 작업은 본 시리즈의 다음 연구로 미룬다.
- 연구의 의의와 한계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兌箴의 察乎詭詐를 메타인지로 읽고 그 도구를 眼孔으로 특정하여, 『大學』 8조목의 집약이 수양의 무게중심을 德目 실천에서 지각으로 옮긴 사건임을 보였다. 둘째, 獨行篇 眼孔 4유형을 察의 대상, 곧 비박탐나의 위장 구조(淸 표면/濁 핵심)로 구조화하고, 그 왜곡이 주로 굳어진 광학에 가까움을 밝혔다. 셋째, 眼孔의 순환적 한계가 본고의 외부 해석이 아니라 이제마 본인의 텍스트 내적 진술(己誠未盡則人僞難悉; 日月·燈燭·螢火)임을 입증하여, 외부 이론의 차용 없이 체계 내부에서 그 맹점을 드러냈다. 넷째, 眼孔이 場 진입 후의 察일 뿐 아니라 場 진입 전 선택의 도구임을 보여 제1편의 場 役配定과 접합하였다.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고는 1940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異本 간 전면 교감은 수행하지 못하였다. 둘째, 융과의 비교는 형태적 유비에 그쳤으며 본격 비교는 후속 연구의 과제다. 셋째, 反誠의 수양론적 해법과 『東醫壽世保元』 병리와의 접합, 그리고 眼孔을 실제로 맑게 하는 수양 방법론은 본고의 범위를 넘는다.
Ⅴ. 결론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兌箴은 修養의 무게중심을 察乎詭詐(메타인지)로 옮기며, 그 도구가 眼孔이다. 『大學』 8조목을 察 하나로 모은 것은 8조목의 폐기가 아니라 수양의 무게중심을 德目에서 지각으로 옮긴 재배치로 읽을 수 있다.
둘째, 獨行篇의 眼孔 4유형은 察이 꿰뚫어야 할 비박탐나의 위장 구조(淸 표면/濁 핵심)를 보인다. 이 왜곡은 주로 굳어진 광학에 가까우며, 詭詐를 察함은 상대의 도덕을 판정함이 아니라 상대의 眼孔 방향을 읽음이다.
셋째, 이 메타인지에는 순환적 한계가 있다. 보는 자의 맑기가 보는 능력을 가두며, 탁한 자는 자기 탁함을 보지 못한다. 이제마는 이 한계를 獨行篇 序에서 본인이 명시하였고(己誠未盡則人僞難悉), 자기 체계를 해와 달이 아니라 등불·반딧불로 한정하였다. 그럼에도 그 한계가 무용을 뜻하지는 않으며, 순환의 실질적 개입점은 反誠으로 제시된다.
넷째, 眼孔은 場 진입 후의 察일 뿐 아니라 場 진입 전 선택의 도구로서 제1편의 場 役配定과 접합한다. 다만 場의 선택조차 순환적 한계에 갇히므로, 결국 수양이 먼저다.
요컨대 『格致藁』의 메타인지는 모든 수양의 토대이자 스스로 한계를 지닌 구조이며, 그 한계에 대한 이제마의 응답은 완전한 해법이 아니라 反誠의 실천이다. 反誠의 구조와 융 개성화와의 비교는 이 글을 토대로 후속 연구에서 다룰 것이다.
참고문헌
- 李濟馬. 格致藁. 韓斗正 編. 咸興: 德興印刷所; 1940.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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