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당 최원장의 溯源齋

機勢取象과 接觸面 — 『格致藁』 「反誠箴」 八卦의 再解釋

· 최장혁

【표제지 / Title Page — 학회지 제출용 별지】

· 논문 종류: 원저 (Original Article) · 국문 제목: 機勢取象과 接觸面 — 『格致藁』 「反誠箴」 八卦의 再解釋 · 영문 제목: Gisetwisang and the Contact Surface: A Reinterpretation of the Eight Trigrams in the Banseongjam of Gyeokchigo · 저자: 최장혁¹ / Choi Jang-hyuk¹ · 소속: ¹ 동제당한의원 / ¹ Dongjedang Korean Medicine Clinic, Incheon, Republic of Korea · 교신저자: 최장혁 (Choi Jang-hyuk) — (22332) 인천광역시 동구 동산로 88, 동제당한의원 / Tel. 032-765-7733 / Fax. 032-773-7734 / E-mail. [email protected] · Running head(국문): 反誠箴 八卦의 機勢取象 · Running head(영문): Gisetwisang of the Banseongjam Trigrams · 공시사항: 본 논문은 학위논문이 아니며, 연구비 지원 및 이해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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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bjectives This study reinterprets the eight trigrams (palgwae, 八卦) of the “Banseongjam” (反誠箴) in the Gyeokchigo (格致藁). The dominant yi-xue (易學, Book-of-Changes) reading maps these trigrams onto the Fuxi/King-Wen trigram diagrams and the four cardinal virtues (仁義禮智). Against this, the study argues that the trigrams are not divinatory positional symbols but gisetwisang (機勢取象)—the image-taking of the momentum (gise, 機勢) of jeongwi (情僞, false or exploitative relational disposition, of which deception, gisa 欺詐, is one representative subtype) arising at the contact surface (the taegeuk) between the self (guk, at the left pole) and others (at the right pole) within a relational field (jang).

Methods A documentary-theoretical study. The Gyeokchigo (1940 Han Du-jeong first edition) was collated with the annotated translations of Ji Gyu-yong (2001) and Yi Chang-il (1999), and cross-referenced with the Sasang-yomok-juhae (四象要目註解) of the Donmu-yugo. Analysis proceeded by a four-stage method (collation–literal translation–annotation–interpretation) and a comparison with the trigram attributes (卦德) of the Shuogua-zhuan (說卦傳) and the generative schema (“Yi you taiji…”, 易有太極) of the Xicí Shangzhuan (繫辭上傳).

Results (1) The trigrams are outcomes, not inputs, instantiating a four-axis-by-two-pole matrix: the four domains generated by the Xicí’s affairs–things–mind–body (事·物·心·身) schema—corresponding respectively to the Zhongyong, the Daxue, Liuxiahui, and Boyi pairings named at the outset of the “Banseongjam”—each split into a self-initiating pole (jonsim, 存心) and a self-guarding pole (susin, 守身), yielding the eight trigrams as the eight resulting intersections. (2) The momentum is explicitly a product of contact (“the nature of mutual contact in coming-going-standing-facing” vs. “the nature attained alone”). (3) No divinatory procedure exists; Yi himself called his image-taking “merely conjecture” (eokgyeon, 臆見), subordinating the borrowed trigram form to its purpose. (4) Directional-trigram assignment exists only in the “Seongmyeongnon” register and is absent from the “Banseongjam,” establishing a dual register use. (5) The trigram form rests on a double borrowing from the Yijing: the Shuogua-zhuan’s trigram attributes (卦德) supply the eight qualitative profiles, while the Xicí Shangzhuan’s generative schema supplies the structure by which a single mind (太極) differentiates into eight positions; both are borrowed forms that Yi himself subordinated to the purpose of imaging jeongwi’s momentum.

Conclusions Image-taking (取象, diagnosis) and self-rectification (反誠, self-warning) are two phases of one self-cultivation structure. The yi-xue reading establishes the cosmological structure; this study restores, on that foundation, the relational-diagnostic operation of the trigrams that a structural reading leaves unaddressed.

Key words Medicine, Korean Traditional; Philosophy, Medical; Interpersonal Relations; Deception; Self-Cont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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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Ⅰ. 서론

『格致藁』 「反誠箴」은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가 인간이 관계 속에서 빠지는 속임의 양태를 八卦에 빗대어 경계한 글이다. 이 八卦가 무엇을 가리키며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동무의 마음론과 수양론을 이해하는 길목이자 그의 易學 수용 방식을 보여 주는 핵심 사안이다.

격치고를 『주역』으로 읽는 작업은 한 계보가 거의 독점해 왔다. 金萬山(1999)이 「性命論」을 주역의 관점에서 분석한 이래, 林炳學(2013·2014)과 김인순·林炳學(2024)은 「格致藁」와 『大學』의 상관, 『주역』 卦圖에 근거한 「性命論」 독해, 그리고 동무 易學觀의 종합으로 이 독법을 체계화하였다. 이 易學派의 공통 골격은 다음과 같다. ① 「性命論」을 文王八卦圖에 대응시키고(林炳學 2014), ② 「反誠箴」의 八卦를 伏羲八卦圖, 나아가 東武太極圖에 대응시키며, ③ 易有太極 구절을 太極(心)·兩儀(心身)·四象(事心身物)으로 풀고, ④ 八卦를 仁義禮智 四德에 배당한다(김인순·林炳學 2024). 한편 사상체질의학회지 내부에서는 일찍이 「反誠箴」의 좌표 도식을 정리한 연구(張賢鎭 등 1992)와, 동무의 세계 이해를 본체·병증의 시스템으로 읽은 연구(印昌植 1995)가 있었다.

이들 선행연구는 八卦가 놓이는 構造(도상·배열)를 정초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 결과, 「反誠箴」 八卦가 어떻게 하나의 구체적 관계 상황을 그 卦로 떨어뜨리는가(取象의 작동), 그 取象의 대상이 무엇인가(接觸面에서 솟는 機勢), 그리고 八卦가 我必行欺詐(存心)와 人必行欺詐(守身)의 비대칭으로 갈라지는 까닭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같은 글자가 텍스트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는 문제 — 「性命論」 계열에서의 方位 배당과 「反誠箴」에서의 쓰임이 같은가 — 도 검토되지 않았다.

본고는 1940년 韓斗正 編 초간본을 저본으로 「反誠箴」 서문과 八卦 각 箴, 그리고 『동무유고』 「四象要目註解」를 교감하여, 「反誠箴」 八卦가 占(象數)이 아니라 太極(心)을 중심으로 좌(知行·我)와 우(祿財·他)가 맞닿는 接觸面에서 솟는 情僞의 機勢를 取象한 것이며, 그 取象(진단)과 反誠(자기 경계)이 한 修養 구조의 두 국면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본고는 八卦를 “情僞의 機勢取象"으로 규정한다. 동무 자신이 총결에서 八箴의 내용을 「情僞」로 묶고 그 작동을 「行欺詐의 機勢」로 풀었으므로(L482–483), 欺詐는 情僞의 대표적 한 種이되 유개념은 情僞다. 이 구분은 坤의 奪(힘)·离의 黠(영악)·坎의 竊(은닉)처럼 言辭的 기만이 아닌 種들을 하나로 포괄하기 위함이다. 또한 본고는 八卦의 형식이 『주역』 두 곳 — 說卦傳의 卦德과 繫辭上傳의 易有太極 생성도식 — 에서 借用되었음을 보인다. 둘 다 동무가 臆見으로 빌린 골격이며, 그 안을 채우는 것은 情僞의 機勢다.

Ⅱ. 연구 대상 및 방법

  1. 연구 대상(저본)

저본은 『格致藁』 1940년 韓斗正 編 초간본(咸興: 德興印刷所)이며, 卷2 「反誠箴」을 주 분석 대상으로 한다. 번역·해석의 대조본으로 池圭鎔 역해(2001)와 李昌一 편역 『東武遺稿』(1999)를 사용하였다. 분석 범위는 「反誠箴」 서문, 八卦 각 箴(乾·兌·离·震·坤·艮·坎·巽), 그리고 八卦의 方位 배당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동무유고』 「四象要目註解」이다.

  1. 분석 방법

원문 교감 → 직역 → 주해 → 해석의 4단 절차를 따랐다. 八卦의 의미층을 가리기 위해 『周易』 「說卦傳」의 卦德(乾健·兌說·离麗·震動·巽入·坎陷·艮止·坤順)을 대조하였다. 아울러 「繫辭上傳」의 易有太極 생성구조(太極→兩儀→四象→八卦)와 대조하여 八卦 생성의 골격을 검토하였다. 또한 「反誠箴」과 「性命論」 계열의 卦 사용을 비교하여 텍스트별 用法 차이를 점검하였다.

  1. 용어 정의

본고는 동무의 관계역동을 기술하기 위해 局·場·面 및 機勢·接觸面을 분석 술어로 사용한다. 이 가운데 機勢는 「反誠箴」 본문에 직접 등장하는 용어이며, 接觸面은 본문의 與人相接之性에서 도출한다. 局·場·面과 流體/固體의 층위 구분은 본고가 채택한 해석틀로서, 원전 술어 자체가 아님을 밝힌다(한계 항 참조). 문헌·이론 연구이므로 IRB 심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Ⅲ. 결과

  1. 反誠箴의 좌표와 機勢 register

이제마는 八箴을 닫으며 하나의 좌표를 세운다. 未來는 하늘에 있어 위(乾兌), 過去는 땅에 있어 아래(坤艮), 知行은 나에게 있어 왼쪽(离震), 祿財는 남에게 있어 오른쪽(坎巽)이며, 그 가운데에 太極이 놓인다(L477–481). 이 좌표는 占筮의 방위반이 아니다. 동무가 『동무유고』 「四象要目註解」에서 八卦에 동서남북을 배당한 것은 性命論 계열의 작업이며, 反誠箴에는 그 方位가 없다. 反誠箴의 축은 我와 他, 未來와 過去라는 관계-시간의 축이고, 그 위에서 읽히는 것은 卦의 자리값이 아니라 接觸面에서 솟는 機勢다.

이 機勢의 정체를 이제마는 총결에서 명시한다. 「乾坤离坎箴之情僞 我必行欺詐於人之機勢也 存心之戒也 / 艮兌震巽箴之情僞 人必行欺詐於我之機勢也 守身之戒也」(L482–483). 여기서 八箴의 내용을 묶는 유개념은 情僞이고, 그 작동을 行欺詐의 機勢로 푼다. 따라서 八卦가 取象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言辭的 기만이 아니라, 관계의 참(誠)을 가린 채 작동하는 일체의 거짓 機勢 — 곧 情僞다. 본고가 八卦를 “情僞의 機勢取象"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1. 八卦의 생성 — 繫辭 「易有太極」과 心-typology

八卦가 어째서 여덟인가. 이제마는 그 생성을 『주역』 繫辭上傳에서 빌려 온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를 인용한 뒤 각 항을 心으로 환원한다 — 「太極 心也 / 兩儀 心身也 / 四象 事心身物也」. 그리고 四象의 각각이 두 국면으로 갈려 八卦가 된다: 「乾事之始也 兌事之終也 / 坤物之本也 艮物之末也 / 离心之急圖也 震心之緩圖也 / 坎身之先着也 巽身之後着也」(L491–494). 즉 八卦는 입력된 여덟 부호가 아니라, 心(太極)이 心身(兩儀)으로, 다시 事·心·身·物(四象)로 분화하고, 그 넷이 각기 二分되어 산출된 여덟 자리다.

이 대목은 종래 易學派(金萬山·林炳學 등)가 격치고를 易理의 우주론으로 읽는 핵심 전거였다. 「統而言之則 六十四卦皆太極也 … 八卦皆心也」(L497–498)라는 동무 자신의 진술이 그 독해를 뒷받침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는 이 구절을 易學派에 양보하지 않는다. 동무는 八卦의 取象을 「形理之取象 只是臆見 而其象有八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L20–22)라 하여 伏羲易의 象이 아님을 못박았다. 그렇다면 「八卦皆心也」는 八卦가 伏羲의 우주적 부호라는 뜻이 아니라, 여덟 卦가 모두 心의 양태 — 곧 관계하는 마음이 接觸面에서 띠는 여덟 국면 — 라는 선언으로 읽어야 한다. 繫辭의 생성 도식은 占의 우주론이 아니라 情僞 機勢의 발생 골격으로 전용된 것이다.

이는 본고가 앞서 활용한 說卦傳 卦德(乾健·兌說·离麗·震動·坎陷·艮止·巽入·坤順)과 짝을 이루는 두 번째 借用이다. 說卦傳이 각 卦의 색(성격)을 빌려 주었다면, 繫辭上傳은 여덟이 어떻게 갈라져 나오는가의 생성 구조를 빌려 준다. 둘 다 동무에게는 臆見으로 차용된 형식이며, 채워지는 내용은 情僞의 機勢다.

  1. 네 축과 두 극 — 反誠箴의 매트릭스

繫辭의 四象이 갈래낸 네 쌍은 反誠箴 서두의 經典·인물 배속과 정확히 겹친다. 「乾兌箴尊道中庸 坤艮箴欽德大學 离震箴取則柳下惠 坎巽箴取則伯夷」(L13–14). 곧 事(乾兌)는 中庸의 축, 物(坤艮)은 大學의 축, 心(离震)은 柳下惠의 축, 身(坎巽)은 伯夷의 축이며, 이것이 다시 좌표의 上·下·左·右에 대응한다(L484–487).

여기에 존심/수신의 분할이 직교한다. 총결의 二分 — 乾坤离坎=我必(존심), 艮兌震巽=人必(수신) — 을 위 네 쌍에 겹치면, 각 축이 정확히 존심 1극과 수신 1극으로 갈린다. 더욱이 繫辭가 각 쌍을 가른 국면(始/終·本/末·急/緩·先/後)이 이 존심/수신과 일치한다. 존심의 네 卦(乾坤离坎)는 始·本·急·先 — 먼저 거는 쪽이고, 수신의 네 卦(兌艮震巽)는 終·末·緩·後 — 뒤에서 받는 쪽이다. 我必(내가 먼저 情僞를 건다)이 시작·앞의 국면에, 人必(남이 거는 情僞를 받아 지킨다)이 끝·뒤의 국면에 놓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축(經典 배속) 좌표 존심極(我必·발신) 수신極(人必·守) 機勢 영역
乾·兌 (中庸) 上·未來 乾 誑誣詒譎 → 誠 兌 詭詐 察 誠僞(진실↔기만)
坤·艮 (大學) 下·過去 坤 奪傲凌欺 艮 誘導不售·知足 力勢(지배↔끌림)
离·震 (柳下惠) 左·知行 离 黠雄莊强 → 自招災 震 雄勇不耀 → 不被攻 自高(과시↔감춤)
坎·巽 (伯夷) 右·祿財 坎 竊·私(公器 전유) 巽 窮困의 詐誣罔 → 忍 取得(횡령↔견딤)

따라서 八卦는 여덟 개의 독립 항목이 아니라 (네 場조건 × 두 방향)의 교점이다. 같은 情僞 dyad가 中庸·大學·知行·祿財라는 네 接觸面 위에서 갈리고, 각 면이 다시 我必/人必로 갈려 여덟 자리를 이룬다.

  1. 여덟 자리의 取象 — 情僞-種 전수

이제 여덟 자리가 각기 무엇을 取象하는지를 본문에서 확인한다. 八箴 본문은 여덟 모두에 情僞-種을 명시하고 있다.

乾(존심, 中庸·誠僞축). 誑·誣·詒·譎의 네 거짓을 들고 그 소거를 誠으로 삼는다. 「獨往能成不爲誑也 獨來能得不爲誣也 獨臨能通不爲詒也 獨立能修不爲譎也」(L36), 「誠者爲意無誑無驕 … 無譎 … 無誣」(L54). 乾의 取象은 言辭的 기만이며, 그 反이 곧 誠이다.

兌(수신, 中庸·誠僞축). 그 誠僞를 機로 직접 묶는다. 「大者之心有誠僞 誠僞之機趁於義利也」(L120). 그 機를 가려내는 일을 守身으로 삼아, 「詭計詐謀 君子之心恒所不及 … 好問而好察邇言隱惡」(L142)이라 한다. 兌의 取象은 說(겉기쁨)에 숨은 詭詐이며, 그 守는 察이다.

坤(존심, 大學·力勢축). 힘의 집결이 부르는 네 강압을 든다. 「人旣趁我我必行奪 人旣就我我必行傲 人旣倚我我必行凌 人旣歸我我必行欺」(L185). 奪·傲·凌·欺 — 欺는 그 넷 중 하나일 뿐이며, 坤의 取象은 공개적 力의 지배다. 그 反은 大舜의 博施濟人이다.

艮(수신, 大學·力勢축). 坤의 奪·傲·凌·欺를 止·行·遇·決로 받아낸다. 「修止以止百奪 修行以行百傲 修遇以遇百凌 修決以決百欺」(L198). 동시에 黠한 자의 誘導에 끌리지 않음을 말한다 — 「雖則智黠誘導不售」(L221), 「知足知止止于安宅」(L276). 艮의 守는 미끼를 사지 않음(不售)과 그침(止)이다.

离(존심, 柳下惠·自高축). 耳目鼻口·肺脾肝腎 등 네 갈래의 다툼을 黠·雄·莊·强으로 잡고, 그 過示가 災를 부른다고 한다. 「萬黠爭機 小黠自以爲黠則招災」(L290). 蘇秦·張儀의 縱橫(L76)이 그 예다. 离의 取象은 自强의 과시이며, 災는 스스로 부른 것이다(自招災).

震(수신, 柳下惠·自高축). 籌策·雄武·儀範·材力을 함부로 드러내면 行僞가 되고, 드러냄이 공격을 부른다. 「心不正而行僞者實難行乎其中矣」(L380), 「自高其勇 怯必攻勇」(L394). 그 守는 감춤이다 — 「雄武可以藏之爲壯」(L364), 「知無不知而知若不知」(L389). 震의 取象은 거짓 위세(行僞)이며, 守는 韜藏이다.

坎(존심, 伯夷·取得축). 名位와 畜積을 은밀히 사유화하는 取得을 말한다. 「竊富竊貴 神心必怒 … 不可以竊」(L430), 「名位畜積 … 此物天下之公器也」(L433–436). 坎의 取象은 公器의 은닉 전유다(竊·私). 그 反은 季次·原憲의 安貧과 浩然之氣다(L411·425).

巽(수신, 伯夷·取得축). 窮困 속에서 만나는 詐·誣·罔과 侮·奪을 견딤으로 받는다. 「同勤或詐 何處無詐」(L463), 「信爾好顏不誣同仕 忠爾好形不罔比隣」(L460), 「必有忍 其乃有濟」(L474). 巽의 守는 忍과 不狂이다.

여덟 자리 가운데 일곱(乾·兌·坤·艮·离·震·巽)은 본문에 情僞-種의 글자를 직접 지니며, 坎만이 기만의 글자 대신 竊·私를 쓴다.

  1. 존심·수신 4형과 거울쌍

위를 발신/수신으로 묶으면 두 벌의 4형이 선다. 내가 거는 情僞(존심)는 乾의 기만형(誑誣詒譎), 坤의 강압형(奪傲凌欺), 离의 과시형(黠雄莊强→自招災), 坎의 은닉형(竊·私)이다. 남이 거는 情僞를 막는 守(수신)는 兌의 察詐(안 속기), 艮의 守止(안 끌려가기), 震의 韜藏(안 나서기), 巽의 忍隨(안 휩쓸리기)다.

두 벌은 축으로 짝지어 거울상을 이룬다. 知行축의 离(존심)와 震(수신)은 둘 다 自高가 災를 부르는 구조다 — 离는 강함을 과시하여 스스로 災를 부르고(自招災), 震은 용맹을 과시하여 공격을 부른다(怯必攻勇). 좌표가 离震을 같은 左(知行·我)에 놓은 까닭이 여기서 드러난다. 祿財축의 坎(존심)과 巽(수신)도 거울상이다 — 坎은 남의 公器를 은밀히 가로채고(取), 巽은 제 궁핍을 떳떳이 견딘다(忍). 伯夷의 배속(부당한 祿을 거부하고 安貧함)이 이 축의 두 극을 함께 설명한다.

  1. 坎箴의 가교 — 竊·私는 어떻게 情僞인가

여덟 자리 가운데 坎만은 본문에 기만의 글자(欺·詐·誑·僞)가 없다. 坎의 種은 侮·竊·私이며, 그 핵심은 名位·畜積의 은밀한 사유화다. 그렇다면 坎의 取得을 情僞로 묶는 근거는 무엇인가. 두 통로가 있다.

첫째, 竊 자체가 情僞의 한 種이다. 정당한 거래(誠)가 아니라 신명이 노할 은닉의 취득이라는 점에서(「竊富竊貴 神心必怒」 L430), 형식은 詐가 아니되 관계의 참을 가린 취득이다. 둘째, 私有는 公器의 위장 전유다. 名位와 畜積은 본래 천하의 公器이거늘(「此物天下之公器也」 L436), 그것을 사사로이 가지면서 사사롭지 않은 듯 가장하는 것 — 곧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보이게 함"이 坎의 거짓이다. 이로써 坎의 取得은 좁은 기만의 밖에 있으면서도 情僞의 유개념 안에 든다.

(이 가교는 본고의 가장 약한 고리를 선제하여 메운다. 坎箴을 “富貴而嬌奢"로 특징짓는 독해 — 이는 실은 巽箴/총결의 구절 L475를 끌어온 오귀속이며, 坎箴 본문의 실체는 安貧과 公器다 — 와 분명히 갈라서기 위함이다.)

Ⅳ. 고찰

  1. 선행연구와의 대비 — 構造와 機勢

격치고를 易學으로 읽는 작업은 크게 두 갈래의 構造 독법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象數·圖書易學 계열의 도상 귀속 독법이다. 金萬山(1999)과 林炳學(2014)·김인순·林炳學(2024)은 「性命論」을 文王八卦圖에, 「反誠箴」의 八卦를 伏羲八卦圖 및 東武太極圖에 귀속시키고, 易有太極을 體用으로, 八卦를 仁義禮智 四德으로 풀어 동무 사유의 우주론적 構造를 정밀하게 드러냈다(김인순·林炳學 2024). 다른 하나는 형식 構造에 주목한 독법으로, 張賢鎭 등(1992)은 「反誠箴」 卦의 배열과 대칭을 분석하였고, 印昌植(1995)은 동무의 세계 이해를 본체·병증의 시스템으로 정리하였다. 세 연구는 입각점은 다르되 八卦가 놓인 構造(도상·배열·체계)를 정초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본고는 이 構造를 부정하지 않는다. 본고가 더하는 것은 그 構造 위에서 「反誠箴」 텍스트가 실제로 작동시키는 관계의 動역학 — 太極인 我가 場에서 他者와 맞닿는 接觸面에서 솟는 機勢, 그 機勢가 我必(存心)과 人必(守身)로 갈리는 비대칭 — 이라는 한 층이다. 두 층은 우열이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 易學派가 形式·構造를 세웠다면, 본고는 그 위에 目的層(관계 진단의 動역학)을 복원한다. 이 점에서 易學派의 卦圖 독법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未完’이며, 본고는 그것을 다음 층이 딛고 설 발판으로 쓴다.

도상에 卦를 귀속시키는 독법은 그 방법의 성격상 動的 텍스트를 靜的 배치로 환원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는 특정 연구자의 한계가 아니라 방법론의 구조적 귀결이다. 실제로 易學派의 「反誠箴」 독해는 도상 귀속·四德·體用의 틀에 머물고, 接觸面에서 솟는 機勢라는 관계 動역학은 분석의 대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김인순·林炳學 2024). 정태적 生理 격자(이목비구·폐비간신, 性氣·情氣)가 배속되는 곳도 「性命論」(文王圖) 쪽이며(林炳學 2014), 「反誠箴」에는 그러한 방위적 생리 배속이 없다. 곧 도상 독법에는 「反誠箴」의 機勢에 도달할 통로가 구조상 마련되어 있지 않다.

도상의 形式과 텍스트의 內容이 어긋난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 복희도는 마주 보는 짝(對待)의 정태적 배열로, 문왕도는 차례로 도는(流行) 동태적 배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귀속과 내용은 서로 어긋난다. 「性命論」은 流行(動)의 배열인 문왕도에 놓이되 그 내용은 이목비구·폐비간신의 정태적 생리 격자(靜)이고, 「反誠箴」은 對待(靜)의 배열인 복희도에 놓이되 그 내용은 접촉면의 機勢(動)다 — 巽箴은 ‘機勢’를 본문에서 직접 말한다. 따라서 도상의 形式으로 텍스트의 動靜을 판정하면 결과가 뒤집힌다. 도상 귀속만으로 「反誠箴」을 읽으면 動的 사건을 靜的 배치로 오인할 위험이 구조적으로 따른다.

‘東武太極圖’라는 명명 자체가 환원 불가의 방증이다. 易學派조차 「反誠箴」의 卦를 표준 복희도에 그대로 두지 못하고, 乾兌를 위·坤艮을 아래·离震을 왼쪽·坎巽을 오른쪽에 두고 가운데를 太極으로 삼은 변형 배치를 ‘東武太極圖’로 따로 명명하였다. 표준 도상으로 환원되지 않기에 새 이름이 필요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마의 배치가 기존 卦圖 밖에 있음을 易學派 내부에서 방증한다. 이는 동무 자신의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참으로 복희의 易象이 이와 같다고 이르는 것은 아니다)와 포갠다. 다만 ‘동무태극도’ 명명은 構造의 변형을 포착하는 데 그치며, 그 構造가 담아낸 機勢의 動역학에는 이르지 않는다. 構造를 새로 명명하는 일과 그 構造가 작동시키는 動역학을 복원하는 일은 서로 다른 층위의 작업이다.

여기서 「臆見」 선언의 자리가 분명해진다. 동무는 八卦가 등장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形理之取象 只是臆見 而其象有八 非眞謂伏羲易象如此也」라 하였다. 이 선언은 卦를 ‘비웠다’는 뜻이 아니라, 取象의 形式(易象)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관계의 機勢를 배치하려는 목적에 종속됨을 저자가 명시한 것이다. 동무는 易象을 부정하지 않되(「非眞謂…如此」), 그것을 機勢 取象의 도구로 삼았다. 易學派가 이 臆見 선언을 인용하면서도 도상 귀속을 유지한 것(김인순·林炳學 2024) 또한, 형식을 목적보다 앞세우는 도상 독법의 경향을 보여 준다 — 거듭 밝히건대 이는 방법의 경향이지 연구자의 오류가 아니다.

본고의 독해는 易學派(金萬山·林炳學)의 우주론적 읽기를 부정하지 않고 흡수한다. 「八卦皆心也 / 六十四卦皆太極也」(L497–498)는 易學派의 강력한 전거이지만, 동무가 八象을 臆見으로 한정한 이상(L20–22), 이 진술은 八卦가 모두 心의 양태라는 心-typology의 선언으로 읽힌다. 易學派가 본 太極-八卦의 생성 구조는, 본고에서는 情僞 機勢가 발생하는 골격으로 기능한다. 두 독해는 같은 텍스트의 두 층 — 構造層과 機勢層 — 이며 우열이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

이 대비의 칼끝은 선행 연구자가 아니라 독법의 층위(構造 대 機勢 動역학)를 향한다. 또한 「反誠箴」에 方位 배당이 부재하다는 사실은 伏羲圖든 文王圖든 어떤 卦圖 귀속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지적이며, 「性命論」의 方位가 동무 고유의 四象 방위(巽=東)여서 文王八卦圖와 어긋난다는 점(林炳學 2014)은 「性命論=文王八卦圖」 동일시에 대한 보조적 정밀화로 둔다. 邪心의 往·來·臨·立을 天命으로 읽은 해석(林炳學 2022)과 달리, 본고는 往·來를 관계의 공간좌표(知行在我 / 祿財在他)로 읽는다 — 같은 글자에 대한 서로 다른 독법이다.

  1. 二重 用法의 함의

동무는 같은 여덟 卦를 텍스트마다 다른 register에 배치하는 저자다. 「性命論」 계열(「四象要目註解」)과 「反誠箴」은 같은 八卦 이름을 쓰되 같은 자리를 가리키지 않으며(卦名≠자리), 두 텍스트를 잇는 동무의 自註가 없어 八卦의 쓰임이 서로 독립적이다. 林炳學의 분석 대상이 「性命論」(文王圖)인 것도 이 독립성과 부합한다. 그러므로 「反誠箴」을 「性命論」의 도상 좌표나 卦圖로 옮겨 읽으면 register의 월경(越境)이 일어난다. 一(心)에서 八(八卦)로의 차원 분화, 上下左右의 대립 영역, 我→人·人→我의 방향성, 그리고 「臆見」 선언이 함께 가리키는 바는, 동무가 卦象을 빌려 관계의 동역학을 배치한 틀이라는 점이다. 다만 ‘좌표계·벡터·場’과 같은 기하·물리 술어는 이 틀에 대한 현대적 명명일 뿐 원전의 표현이 아니다. 또한 통제 가능한 知行과 통제 불가능한 祿財를 가른 좌우 분할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눈 스토아의 이분(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과 견줄 만하되, 동무는 거기에 場·機勢라는 관계역학을 더해 초연이 아니라 役을 거스르는 修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갈라진다.

  1. 取象(진단)과 反誠(처방)의 봉합

八卦 取象은 접촉면 機勢에 대한 진단이고, 反誠은 그 진단에 대한 자기 경계(存心之戒·守身之戒)라는 처방이다. 둘을 떼어 내면 取象만 남아 占이 되거나, 反誠만 남아 공허한 자경(自警)이 된다. 取象과 反誠은 한 修養 구조의 두 국면으로 묶일 때에만 작동한다.

  1. 說卦傳 골격의 차용과 전용

본고는 卦德의 골격을 차용한 것과 卦圖의 配當을 복제한 것을 구별하였다. 동무는 「說卦傳」의 卦德을 뼈대로 삼되, 그 의미를 접촉면의 機勢로 전용하였다.

  1. 한계와 후속

① 저본은 초간본과 두 대조본에 한정되며 추가 이본 교감이 남는다. ② 局·場·面 및 流體/固體의 층위 구분, 그리고 좌표·방향성 등 기하적 기술은 본고가 채택한 해석틀(현대적 명명)로, 원전 술어 그 자체가 아니다. ③ 八卦 전체를 신체·감각에 배당하는 8중(八重) 도식의 동무 원전 귀속 여부는 본고의 범위를 넘어 별도 검토를 요한다. ④ 「四象要目註解」 방위 배당이 동무 自註인지 후대 편자의 주해인지는 본 저본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다만 어느 쪽이든 方位가 「性命論」 계열에만 한정된다는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 ⑤ 「性命論」의 性氣·情氣와 「反誠箴」의 機勢가 맞닿는 마음 층위의 연결은, 八卦 卦名을 경유하지 않는 별도 경로의 과제로 후속 병리 논의에서 다룬다. 융(C. G. Jung)·주자(朱子)와의 비교는 본고의 범위 밖으로, 별고에서 다룬다. ⑥ 본고 Ⅲ장의 행번호(L)는 검색본(이경성본)에 의거하며, 卷경계·자형·교감(己/已, 而其象有八 등)은 1940년 韓斗正 초간본 영인 대조 후 확정되어야 하고, 관련 古文 강독의 타당성은 별도의 문헌학적 검토를 요한다.

Ⅴ. 결론

  1. 「反誠箴」의 八卦는 占(象數)이 아니라, 太極인 我가 場에서 他者와 맞닿는 接觸面에서 솟는 情僞의 機勢를 取象한 것이다.
  2. 八卦는 입력이 아니라 결과다. 繫辭 「易有太極」이 생성한 네 축(事物心身 — 中庸·大學·柳下惠·伯夷)이 각기 존심(我必)·수신(人必) 두 극으로 갈리며, 八卦는 그 4축×2극의 교점이다.
  3. 八卦의 형식은 『주역』 두 곳에서 빌린 二重 借用 골격이다 — 說卦傳의 卦德(성격)과 繫辭上傳의 易有太極 생성구조(생성)이며, 둘 다 동무 자신이 臆見으로 빌린 형식이고 그 안을 채우는 것은 情僞의 機勢다.
  4. 동무는 같은 八卦를 텍스트별로 다른 register(「性命論」 계열의 方位 / 「反誠箴」의 機勢)에 썼다. 「反誠箴」을 卦圖로 읽는 것은 register의 월경이다.
  5. 取象(진단)과 反誠(자기 경계)은 한 修養 구조의 두 국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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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林炳學. 東武 이제마의 四象的 사유체계와 『대학』: 「格致藁」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2013;81:295-320. (Korean)
  4. 林炳學. 『주역』 文王八卦圖에 근거한 『동의수세보원』 「性命論」 고찰. 퇴계학과 유교문화. 2014;55:203-234. (Korean)
  5. 林炳學. 『東醫壽世保元』과 『格致藁』의 상관성 고찰: 好善·惡惡·邪心·怠心을 중심으로. 민족문화. 2022;62:261-287. (Korean)
  6. 김인순, 林炳學. 東武 이제마의 易學觀 고찰. 시민인문학. 2024;46:215-239. (Korean)
  7. 張賢鎭, 宋正模, 宋一炳. 格致藁 反誠箴에 나타난 李濟馬의 哲學思想에 關한 考察. 사상체질의학회지. 1992;4(1):53-75. (Korean)
  8. 印昌植. 이제마가 바라본 세계: 본체론과 병증론. 사상체질의학회지. 1995;7(1):305-331. (Korean)
  9. 池圭鎔. 東武 格致藁 譯解. 서울: 영림사; 2001. (Korean)
  10. 李昌一. 東武 이제마가 남긴 글 東武遺稿. 서울: 청계; 1999. (Korean)

(『周易』 「說卦傳」·「繫辭上傳」과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Epictetus, Encheiridion)은 본문 내 원전 인용으로 처리하였다.)


최장혁 | 한의사 · 동제당한의원 원장 · 연구 방법: DJD 다중 문헌 교차 리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