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당 최원장의 溯源齋

鄙薄貪懦는 누구를 치는가 — 굳은 局의 接觸面과 互爲

· 최장혁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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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行篇 × 壽世保元 「局·面·局回」 三部作 · 第二部 〔面 — 맞닿는 자리〕

들어가며

제1부는 굳은 局을 그 안쪽에서 보았다. 鄙薄貪懦는 별종의 악인이 아니라 자기에게 본래 취약한 德마저 스스로 버린(棄) 자이며, 그 본질은 욕망의 크기가 아니라 자기 심지조차 밝게 보지 못하는 인식론적 봉쇄(闇辨)에 있었다. 그리고 제1부는 한 문장을 열어 둔 채 닫혔다 — 굳은 局은 혼자 살지 않는다. 鄙薄貪懦의 정의 자체가 棄禮·棄義·棄智·棄仁이라는 관계어(關係語)인 한, 局이 서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와 맞닿기 때문이다.

본부는 그 맞닿는 자리, 곧 面을 본다. 局場面 유체론에서 面은 두 局이 실제로 접촉하는 막(膜)이다. 만남 이전부터 각자의 몸에 형세로 서 있는 局, 두 局이 부딪혀 생기는 관계 공간 場, 두 局이 살을 맞대는 접촉막 面 — 이 가운데 場과 그 안의 살핌(察, 眼孔)은 앞선 두 논문에서 다루었으므로(최장혁, 場役配定 ; 최장혁, 眼孔), 본 시리즈는 場을 비축(非軸)으로 접어 두고 局과 그 局이 만드는 面만을 본다. 제1부가 局의 안쪽이었다면, 제2부는 局의 바깥 면이다.

다행히 우리는 면을 처음부터 짐작으로 그릴 필요가 없다. 『격치고』에서 가장 먼저 저술된 독행편(獨行篇)이 바로 면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독행편은 鄙薄貪懦 한 사람의 내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다른 局과 만나 무엇을 하는가 — 누구를 노여워하고(怒), 누구에게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며(凌·傾·賊), 어떤 기술로 누구를 치는가(術) — 를 거의 면의 현미경처럼 적는다. 제2부는 이 독행편의 면 기록을 유체론의 언어로 읽는다.

본부의 논지는 한 줄로 선다. 面은 본래 相(서로 됨)의 자리이나, 굳은 局에게서는 相이 결핍된다 — 더 정확히는 相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며, 그 불능이 곧 침탈(凌·傾·賊)로 전화(轉化)한다. 굳은 局의 면은 나쁜 관계가 아니라 관계 자체의 붕괴이며, 이하의 모든 원문 인용은 이 한 명제의 전개다.

1. 互爲 — 한 局의 두 얼굴이 맞서다

면을 읽는 첫 열쇠는 짝이다. 독행편은 鄙薄貪懦를 홀로 두지 않고 반드시 그 맞은편에 忠信廉解를 세운다.

忠者之行 鄙者必怒之者 以其直尺之小誼而自多而簡他也 信者之行 薄者必怒之者 以其彌縫之小諒而貴己而賤人也 廉者之行 貪者必怒之者 以其要名之小讓而必欲幷呑廣居也 解者之行 懦者必怒之者 以其誘人之小慧而必欲據取大位也

忠者의 행실을 鄙者가 반드시 노여워하고(怒), 信者를 薄者가, 廉者를 貪者가, 解者를 懦者가 반드시 노여워한다. 짝은 정확하다 — 忠↔鄙, 信↔薄, 廉↔貪, 解↔懦. 제1부에서 본 체질 배속(鄙=太陽人, 薄=少陽人, 貪=太陰人, 懦=少陰人)을 그대로 얹으면, 忠은 太陽人의, 信은 少陽人의, 廉은 太陰人의, 解는 少陰人의 다른 얼굴이 된다. 곧 忠信廉解와 鄙薄貪懦는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같은 局의 두 상태다 — 풀려 흐르면 忠信廉解, 굳어 멈추면 鄙薄貪懦. 같은 太陽人이 禮를 살려 흐르면 忠者이고, 禮를 버려 굳으면 鄙者다.

여기서 互爲(호위)의 첫 뜻이 드러난다. 두 局은 서로를 통해서만 서로가 된다. 흐름은 굳음을 배경으로 흐름이 되고, 굳음은 흐름을 배경으로 굳음이 된다. 그래서 면에서 둘이 만나면, 굳은 局은 풀린 局을 만나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버렸는지를 — 보지 못한 채 — 노여워한다.

怒의 구조가 이를 말한다. 鄙者가 忠者에게 노하는 까닭을 독행편은 “그 곧음(直尺之小誼)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기 때문(自多而簡他)“이라 적는다. 그러나 自多·簡他는 忠者의 죄가 아니라 鄙者의 눈에 비친 상(像)이다. 棄禮로 굳은 局에게는 타인의 禮가 자기를 겨눈 모욕으로 보인다. 면에서 굳은 局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풀린 局의 德을 침해로 오독(誤讀)하는 것이다. 제1부의 闇辨 — 자기 심지를 보지 못함 — 이 면에서는 타자의 德을 보지 못함으로 확장된다. 봉쇄는 안에서 끝나지 않고, 접촉면에서 타자를 향한 노여움으로 새어 나온다.

한 가지 미리 구획해 둔다. 지금까지의 互爲는 같은 局의 두 상태가 서로를 통해 서로가 되는 존재론적 층위였다. 뒤(5절)에서 다시 만날 互爲 — 자리의 進退·先後 — 는 이 같은 互爲가 사회적 장으로 펼쳐진 또 다른 척도일 뿐,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互爲를 두 척도에서 읽는 것이다.

2. 굳은 局은 相을 맺지 못한다

면은 본래 무엇의 자리인가. 서로 됨(相)의 자리다. 독행편은 사람이 홀로 서지 못하고 반드시 서로를 통해 이루어짐을 相成·相謀·相依·相得의 네 짝으로 적는다. 그런데 그 네 짝은 모두 鄙薄貪懦에게서 막힌다.

鄙者之不肖 一身元無資身之策 則與之於相成者 本無可謀者也 貪者之不肖 萬念全爲肥己之圖 則與之於相謀者 自無可成者也 薄者之不肖 一心元無兼人之義 則與之於相依者 本無可得者也 懦者之不肖 萬行全爲役人之計 則與之於相得者 自無可依者也

鄙者는 제 한 몸 세울 계책조차 없어 더불어 이루려는(相成) 자에게 꾀할 것이 없고, 貪者는 만 가지 생각이 모두 제 몸 살찌우는 그림이라 더불어 꾀하려는(相謀) 자에게 이룰 것이 없으며, 薄者는 남을 아우르는 義가 없어 더불어 기대려는(相依) 자에게 얻을 것이 없고, 懦者는 만 가지 행이 모두 남을 부리는 계산이라 더불어 얻으려는(相得) 자에게 기댈 것이 없다.

핵심은 부정의 위치다. 막힌 것은 상대가 아니라 굳은 局 자신이다 — 원문이 거듭 本無·自無라 적듯, 관계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더불어 맺을 안쪽이 본디 없다. 들머리에서 못 박은 相의 불능이 여기서 원문으로 확인된다. 相成·相謀·相依·相得은 두 局이 서로에게 내어 주는 관계어인데, 굳은 局은 내어 줄 안쪽(資身之策·兼人之義)이 비어 있어 관계의 한쪽 끝을 채우지 못한다. 坤箴이 능력만으로는 사람이 서지 못함을 정확히 적은 그대로다.

雖有强力若無忠心 雖有才能若無敬心 雖有權衡若無恭心 雖有識見若無信心

강한 힘이 있어도 忠心이 없으면, 재능이 있어도 敬心이 없으면 그 힘과 재능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鄙薄貪懦의 비극이 여기 있다. 局은 본래 혼자 서지 못하는데, 굳은 局은 함께 서는 길(相)마저 스스로 닫았다. 그리고 닫힌 자리는 비어 있는 채로 남지 않는다. 相이 불가능한 면을, 굳은 局은 침탈로 채운다. 다음 절이 그 침탈의 마음이다.

3. 맞닿는 자리에서 솟는 마음 — 凌·傾·賊·掩

면에서 굳은 局과 풀린 局이 닿을 때, 굳은 局의 안에서 솟는 마음을 독행편은 또렷한 대구로 적는다.

鄙者之力粗有一長於忠者 則凌心必生也 故以忠而制鄙者 不可不益修力也 薄者之交粗有一長於信者 則傾心必生也 故以信而制薄者 不可不益修交也 貪者之局粗有一長於濟者 則賊心必生也 故以濟而制貪者 不可不益修局也 懦者之猷粗有一長於幹者 則掩心必生也 故以幹而制懦者 不可不益修猷也

鄙者의 힘이 忠者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능멸하는 마음(凌心)이 반드시 생기고, 薄者의 사귐이 信者보다 나으면 기울여 무너뜨리는 마음(傾心)이, 貪者의 局이 濟者(廉者)보다 나으면 해치는 마음(賊心)이, 懦者의 꾀(猷)가 幹者(解者)보다 나으면 덮어 가리는 마음(掩心)이 반드시 생긴다. 凌·傾·賊·掩은 굳은 局이 면에서 솟구치는 침탈의 마음이며, 그 방아쇠는 단 하나 — “조금이라도 나음(粗有一長)“이다. 우열이 생기는 순간, 면은 곧 침탈로 기운다.

여기서 독행편은 풀린 局의 대응을 함께 적는다. 鄙를 制하려면 忠으로 하되 반드시 힘을 더 닦아야 하고(益修力), 薄을 制하려면 信으로 하되 사귐을 더 닦아야 하며(益修交), 貪을 制하려면 濟로 하되 局을 더 닦아야 한다(益修局). 懦를 制하려면 幹으로 하되 꾀를 더 닦아야 한다(益修猷). 결정적인 것은 益修, 곧 끊임없이 더 닦음이다. 풀린 局은 가만히 있어도 굳은 局을 制하는 것이 아니다. 닦기를 멈추면 그 우열은 도리어 굳은 局 쪽으로 기울고, 풀린 局 자신도 굳기 시작한다. 이것은 제1부의 명제 — 局은 닫히지 않았다, 봉쇄는 상태이지 본성이 아니다 — 의 면 버전이다. 풀린 局이 풀린 채로 있는 것 역시 운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益修의 상태다. 면에서는 누구도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坤箴은 이 접촉의 기제를 개인의 사례에서 일반 법칙으로 끌어올린다. 능력(强力·才能·權衡·識見)이 서면 타자가 그것을 향해 붙는다(趁·就·倚·歸). 그 접촉면에서 誠心(忠·敬·恭·信)이 받쳐 주지 못하면, 붙은 타자는 곧 침탈의 대상이 된다.

人旣趁我我必行奪 人旣就我我必行傲 人旣倚我我必行凌 人旣歸我我必行欺

사람이 내게 붙으면 나는 반드시 빼앗고(奪), 다가오면 거만하며(傲), 기대면 능멸하고(凌), 돌아오면 속인다(欺). 붙음·다가옴·기댐·돌아옴은 본래 相의 신호다. 그러나 안이 비어 굳은 局에게 그 신호는 奪·傲·凌·欺의 기회로만 읽힌다. 독행편의 凌心과 坤箴의 凌이 같은 글자로 만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면에서 능력이 德 없이 설 때 일어나는 일은 하나로 수렴한다.

4. 침탈의 기술 — 術·陰賊·予奪

면의 침탈은 충동에 그치지 않는다. 왜 마음(凌·傾·賊)이 기술(術)로 굳는가. 局은 본래 혼자 서지 못해(§2 雖有强力若無忠心) 굳은 局 역시 타자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지만, 그에게는 相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접촉은 한 번의 충돌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 교환할 안쪽이 없는 局은 같은 타자에게서 거듭 추출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반복되는 추출이 정형화된 방식, 곧 術로 굳는다. 독행편은 鄙薄貪懦가 忠信廉解를 치는 그 방식에 각각 이름을 붙인다.

[鄙者] …益合從爲足恃 此所以奸擯忠之術也 薄者之釣時世者 以善儀表而媚交結爲先着 此所以桀傾堯之術也 貪者之爭地局者 以據樞要而樹黨援爲緊務 此所以頑制廉之術也 懦者之掩材力者 以設香餌而收遊土爲妙策 此所以不肖勝賢之術也

간사함으로 충직함을 물리치는 기술(奸擯忠), 사나움으로 어짊을 기울이는 기술(桀傾堯), 완악함으로 청렴을 제압하는 기술(頑制廉), 못남으로 어짊을 이기는 기술(不肖勝賢) — 굳은 局은 합종(合從)·미교(媚交)·수당(樹黨)·향이(香餌)를 동원해 풀린 局을 체계적으로 친다. 면의 침탈은 수동적 결여가 아니라 능동적 공격이다.

그 공격은 또한 은밀하고, 권력에 따라 자세를 바꾼다. 독행편은 굳은 局이 면에서 보이는 두 얼굴을 적는다.

鄙者之能恣橫肆毒於尊顯者 而反隱忍含垢於卑賤者 予奪之權也 貪者之能恣橫肆毒於卑賤者 而反隱忍含垢於尊顯者 强弱之形也 薄者之能恣橫肆毒於慣熟者 而反隱忍含垢於生疎者 畏侮之勢也 懦者之能恣橫肆毒於生疎者 而反隱忍含垢於慣熟者 攻守之策也

같은 굳은 局이 한쪽에는 제멋대로 독을 부리고(恣橫肆毒), 다른 쪽에는 참고 굽힌다(隱忍含垢). 鄙者는 높고 드러난 자에게 사납고 낮고 천한 자에게 굽히며(予奪之權), 貪者는 그 반대다(强弱之形). 면에서 굳은 局의 자세는 상대의 힘에 따라 뒤집힌다. 침탈은 약자에게로, 굴종은 강자에게로 — 면은 德이 아니라 力의 비대칭으로 분배된다. 독행편이 굳은 局을 “은밀히 해친다(陰賊)“고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鄙者는 곧은 자를(陰賊耿介者), 貪者는 의로운 자를(陰賊直義者), 薄者는 은혜로운 자를(陰賊惠愛者), 懦者는 능한 자를(陰賊行能者) 드러나지 않게 친다.

그렇다면 풀린 局은 어떻게 면을 견디는가. 독행편은 굳은 局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적되, 끊어 막을 수 없는 한계를 함께 적는다.

鄙者之慾心無厭也 可鎭而不可瀆也 薄者之私心無窮也 可遠而不可遜也 貪者之放心無極也 可停而不可邇也 懦者之佚心無歇也 可備而不可與也

鄙者의 욕심은 싫증이 없어 누를(鎭) 수는 있어도 함부로 건드릴(瀆) 수 없고, 薄者의 사심은 다함이 없어 멀리할(遠) 수는 있어도 낮출(遜) 수 없으며, 貪者의 방심은 끝이 없어 멈출(停) 수는 있어도 가까이할(邇) 수 없고, 懦者의 일심은 쉼이 없어 대비할(備) 수는 있어도 함께할(與) 수 없다. 면에서 풀린 局이 할 수 있는 일은 鎭·遠·停·備 — 누르고 멀리하고 멈추고 대비하는 절제이지, 굳은 局을 풀어 흐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굳은 局을 흐르게 하는 일은 면의 몫이 아니라, 그 局 자신의 안쪽 — 제1부가 본 明而辨之의 자리 — 에 달려 있다.

5. 互爲의 사회적 그물 — 地局과 處勢

지금까지 면은 두 局의 일대일 접촉처럼 보였다. 그러나 독행편은 면을 사회적 그물로 넓힌다. 그 매개가 地局과 處勢다.

地局者 大家一身處地 一方萬家恒産 萬務同出 廉者廣濟 貪者擅利 成就入民 蕃殖財力之局也 處勢者 上下人類同聚之處 材力不等 賢愚殊品 人爵之處勢

地局은 재력이 모이고 갈리는 局이고(廉者는 두루 구제하고 貪者는 이익을 독점한다), 處勢는 사람의 위계가 갈리는 자리다(賢者와 愚者가 품(品)을 달리한다). 면의 충돌은 빈 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主客·親疎·統屬·首從이라는 사회적 위치 위에서 일어난다.

主客有揖讓之道而忠奸有進退之機 親疎有應接之道而堯桀有先後之權 統屬有公治之道而廉貪有內外之區 首從有必行之道而賢不肖有上下之勢

그리고 그 위치에서 대립하는 局들은 서로를 통해 자리를 다툰다.

富貴爲公之所出而忠奸互爲進退 黨與交遊之所合而堯桀互爲先後 資局營私之所立而廉貪互爲進退

忠奸이 나아가고 물러남을 互爲하고, 堯桀이 앞서고 뒤섬을 互爲하며, 廉貪이 안과 밖을 互爲한다. 여기서 互爲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사회적 동역학의 이름이다 — 한 局이 나아가면 맞선 局이 물러나고, 한 局이 자리를 얻으면 맞선 局이 자리를 잃는다. 면은 두 사람의 살갗이 아니라, 局들이 위치를 두고 끊임없이 교대하는 그물이다.

성명론은 이 그물의 바탕을 적는다.

天時大同也 事務各立也 世會大同也 交遇各立也 人倫大同也 黨與各立也 地方大同也 居處各立也

큰 마당은 모두가 함께하는 大同이되, 그 안에서 각자는 홀로 선다(各立). 면이란 곧 大同의 마당에서 各立한 局들이 서로 닿는 모든 접점이다. 굳은 局은 이 各立을 침탈로 — 풀린 局은 益修로 — 메운다. 같은 그물 위에서 두 局은 서로를 통해 끝없이 자리를 바꾼다.

닫으며 — 制하는 자리, 局回의 씨앗

면은 굳은 局이 풀린 局을 일방적으로 짓밟는 자리이기만 한가. 아니다. 독행편은 制를 잊지 않는다 — 忠으로 鄙를 制하고, 信으로 薄을, 濟로 貪을 制한다. 면은 침탈의 자리인 동시에 制의 자리다. 굳은 局의 凌·傾·賊에 맞서 풀린 局이 益修로 버티는 한, 면은 한쪽으로 닫히지 않는다.

이것이 제1부의 마지막 명제와 만난다. 局은 굳었으되 끝내 닫히지 않았다. 그 닫히지 않음이 안에서는 希聖의 가능성이었다면, 면에서는 制의 가능성이다. 굳은 局이 면을 침탈로 다 채우지 못하는 까닭은, 맞은편에 益修하는 풀린 局이 서 있어 그 互爲가 어느 한쪽의 완결을 끝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면의 충돌은 닫힘의 증거가 아니라 닫히지 않음의 증거다.

그러나 닫히지 않음은 평화가 아니다. 凌·傾·賊이 쌓이고 予奪·攻守가 거듭되는 면은, 그 비대칭을 한 방향으로만 축적하지 않는다. 互爲가 進退·先後의 교대인 한, 한쪽으로 쌓인 비대칭은 언젠가 역전의 조건을 낳는다. 그 역전이 의도된 되갚음으로 돌아설 때, 면은 한 바퀴를 향해 기운다 — 다만 그 한 바퀴가 어떻게 도는가는 면의 몫이 아니라 다음 〔局回〕의 물음이다. 면에서 맞닿은 두 局이 서로를 통해 자리를 바꾸는 일이 끝내 한 바퀴(回)를 그릴 때, 우리는 〔局回〕에 이른다.

제3부 〔局回〕는 그 한 바퀴를 본다. 면에서 주고받은 침탈이 治亂을 따라 어떻게 한 바퀴 돌며, 그 한 바퀴가 끝내 닫히지 않고 어떻게 자기에게로 돌아서는 자리(反誠)로 열리는가 — 제1부가 열어 둔 “局은 닫히지 않았다"는 명제는 거기서 마지막으로 회수된다. 면은 그 회수의 직전, 局이 가장 격렬하게 타자와 부딪히는 자리였다.


참고문헌

  1. 李濟馬, 『格致藁』(獨行篇·坤箴), 韓斗正 編, 咸興: 德興印刷所, 1940.
  2. 李濟馬, 『東醫壽世保元』(辛丑版, 性命論·四端論).
  3. 李濟馬, 『東醫四象初本卷』.
  4. 裵英淳, 「이제마의 인간론 — 衆人의 유형론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 5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2, 323–357.
  5. 尹德泳·高炳熙, 「獨行篇에 나타난 鄙薄貪懦者에 대한 考察」, 『사상의학회지』 8(1), 1996, 57–74.
  6. 金芝英·宋一炳·高炳熙, 「知行論에 관하여」, 『사상의학회지』 7(2), 1995.
  7. 李秀璟·高炳熙·宋一炳, 「四象醫學의 형성 과정에 관한 문헌적 고찰」, 『사상의학회지』 10(1), 1998, 41–54.

최장혁 | 한의사 · 동제당한의원 원장 · 연구 방법: DJD 다중 문헌 교차 리서치